연중 12주일
한 분야를 몰두하는 사람들이 던지게 되는 질문이 있습니다. ‘내가 지금 무엇을 놓치고 있는 거지?’ 사업을 하건, 공부를 하건, 운동과 예술을 하건 간에 어떤 특정 분야에 대해 몰두를 하긴 하는데 생각만큼 되지 않을 때, 그때 던지는 질문이지요. ‘내가 지금 무엇을 놓치고 있는 거지?’ 누구도 알려주지 않기에 힘들 수 밖에 없는데요.
아프리카 속담에 있답니다. ‘길을 잃는다는 것은 곧 새로운 길을 알게 된다는 뜻이다’ 길을 잃었는데 그게 끝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길을 알게 된다는 뜻이 뭘까요? 여기서 잠깐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욥은 졸지에 자녀와 재산과 모든 것을 잃습니다. 종기가 나는 피부병까지 앓지요. 여기에 친구란 사람들이 찾아와 위로랍시고 한다는 말이 ‘네가 뭘 잘못했겠지.. 그러니까 이런 거 아냐?’ 라는 투로 말합니다. 억울하고 답답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게다가 하느님께서 하신다는 말씀도 처음에는 알아듣기 힘듭니다. “누가 문을 닫아 바다를 가두었느냐?” 순간 모를 말씀 같습니다. 복음에 예수님은 혼자 풍랑 속에 주무십니다. 참 속도 좋으십니다. 제자들은 불안해 죽겠는데 말이죠. 그러면서 하신다는 말씀이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랍니다. 이게 무슨 갑자기 분위기 싸해지는 뜬금없는 말씀입니까? 여기서 욥과 제자들은 무엇을 놓치고 있었을까요? 답을 2독서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릴 다그칩니다. 우린 이제부터 아무도 속된 기준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착한 욥과 예수님을 따른 제자들이었지만 정작 그분의 힘과 능력을 완전히 신뢰하진 못했습니다. 앞서 말씀인 속된 기준으로 말미암아서지요. 그 믿음은 언뜻 실용적이지 않고 상식적이지 않아 보이고요. 기능적으로 비합리적이라 여겼기 때문이지요. 오늘날 세속화된 세상에서 인간이 거룩함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2가지 위험이 있습니다. 영지주의와 페라지우스 주의입니다. 이단이죠. 개념설명은 시간상 다음으로 미루고요. 대신 위험한 이유만 말씀드리지요. 영지주의는 경험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위로. 깨달음.헌신과 지식을 줄 수 있지만 사람들을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갇혀있게 만듭니다. 그래서 이성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신비를 부정하지요. 펠라지우스 주의는 신비와 은총보다 인간의 의지를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 결과로 하느님의 자비. 인간을 먼저 생각하는 하느님의 사랑을 잊어버리게 만들지요. 좀 뜨끔하지 않습니까? 바다와 풍랑마저 움직일 수 있는 창조주요, 조물주이신데 그저 갑작스레 다가온 것들에 대해 실망하고 좌절하고 분위기가 어수선해졌습니다. 이건 우리라고 다르진 않지요.
사랑하는 인헌동 본당 교우 여러분
많은 일들이 벌어집니다. 그러다 보니 순간 내리는 판단이라는 것이 땜질 방식이나 무사안일하게 처리하는, 같은 불상사가 매번 발생하는 결정을 내리곤 하는데요. 주님께서는 우리가 진정 무엇을 믿고 가야 할지 알려주십니다. 그러면서 당신의 방식으로 세상을 이겨가는 방식을 택하십니다. “먼저 하느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나머지는 곁들여 받을 것이다” 는 말씀처럼 먼저 놓치지 않고 찾을 것부터 잘 간수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내가 누구랑 함께 있는 지 알 때 그 믿음은 당연히 생길 것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