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4주일
꼭 위대하고 훌륭한 사람이 뭔가를 이뤄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대다수가 겪으면서, 처하면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하다보니 나중에 인정을 받곤 합니다. 여러분의 직업도 그렇잖습니까? 처음부터 계획한 것은 아니었지요. 살다보니 여기까지 왔는데요. 그렇기에 무시당할 수 있는 분들은 아니신데요.
이탈리아 출신 작곡가 엔니오 모리꼬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유명한 영화음악 작곡가이지요. 우리가 아는 영화 미션, 시네마 천국, 로버트 드니로가 나오는 원스 업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등 명장면이 나오는 곳마다 이 사람 음악이 흐릅니다. 하지만 상복은 없었습니다. 세상 떠들썩한 유명한 음악을 만들어도 아카데미 수상을 하지 못했습니다. 외국인이라는 텃세 때문에 더 그랬습니다. 결국 나이 든 그에게 공로상을 줬으니까요. 클래식 작곡을 전공했지만 세상은 그에게 처음부터 편안한 일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명을 쓰면서 황야의 무법자 등 이태리에서 만든 서부 영화를 시작으로 생활전선에 뛰어듭니다. 녹음을 해야 하는데 무명 시절 오케스트라를 쓸 수 없는 열악한 형편이다 보니 하모니카, 오카리나, 휘파람, 리코더 등 값싼 악기로 녹음합니다. 유명한 ‘아아~~♪♬,(황야의 무법자)'가 그의 작품입니다. 평생 400곡을 작곡했다고 합니다. 가난해서 더 그랬고요. 이걸 계산하면 1년에 7-8편을 꾸준히 냈고요. 젊은 시절에는 1년에 20편도 만들었답니다. 게다가 그냥 끄적이는 수준이 아니라 스코어 악보라고, 오케스트라처럼 각 악기마다 편성을 달리해서 만들려면 편집증에 가까운 집중이 필요합니다. 이른바 재능도 있어야 하고요. 노력도 해야 하지만, 꺾이지 않는 고집도 한 몫 했기에 능력있는 유명한 사람이 되었지만 안타깝게도 전문가는 알아볼 뿐, 대중은 제대로 된 대접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왔었지만 영화 취재 기자들도 그를 못 알아보고 배우들만 인터뷰 했다는데요.
오늘 여러분이 들은 말씀의 주 요지는 이러합니다.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는 형편에서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유리하고, 필요한 것에만 눈이 돌아갑니다. 그래서 예언자도 무시당했고 예수님도 그런 취급을 받았고요. 지금의 우리들도 그런 형편에 놓입니다. 인간적으로 화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아무 것도 안 하고 상대방을 탓해야 할까요? 아니지요. 인정을 받고 싶겠지만 주위 여건은 그리 호락호락 하지 않습니다. 그게 소명이건, 먹고 살기 위해서건 간에 우린 계속해야 합니다. 무던히 버티며 맷집을 키울 수 밖에 없는데요. 그래서 한편으론 즐겨야 합니다. 즐겁지 않아도 즐거움을 찾아야 합니다. 더 나은 방도를 찾아가면서 말이지요.
예수님은 좋은 것을 제일 먼저 고향 사람들에게 알리시지만 동네 사람들은 이를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원래 가까운 사람들이 더 욕을 하곤 하지요. 1독서의 에제키엘 예언자에게 하느님은 말씀하십니다.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완고한 저 자손들에게 내가 너를 보낸다.” 하느님도 아십니다.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요. 2독서의 바오로도 고백합니다. 지병이 있었습니다. “내가 자만하지 않도록 하느님께서 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이 일과 관련하여 나는 그것이 나에게서 떠나게 해주십시고 세 번이나 청하였습니다.” 하지만 지병은 없어지지 않았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분들은 다음 행보를 이어나갔습니다. 이분들의 공통점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분들이 아니었습니다. 무던히, 계속, 하던 일을 꾸준하게 이어나갔습니다. 알기 때문입니다. 무엇을요? 자신이 하는 일이 옳다는 것을요. 비록 취급은 못 받았지만 소중함을 모르는 상대방을 탓하지 않고 계속 해나갔습니다. 어쩌면 변하는 세상에서 나는 하지 못해도 상대방에게 그런 것을 바라곤 하지요. ‘내가 먹던 맛집이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기술자가 거기서 계속 장사를 했으면 좋겠다’ 라고요.
사랑하는 인헌동 본당 교우 여러분
미션이란 영화에서 원주민을 죽이면서까지 땅을 빼앗고 억지로 선교를 강요하던 추기경은 회상에 잠기며 이렇게 말합니다. ‘선교하던 신부들은 죽고 저는 살아남았습니다. 하지만 실제 죽은 자는 나고, 산 자는 그들입니다. 왜냐하면 언제나 그렇듯, 죽은 자의 정신은 산 자의 기억 속에 남기 때문입니다.’ 순교하신 영혼들을 기억하면서 우린 신앙을 배우고 키워나갑니다. 그러니 당장의 평가와 취급 당함에 좌절하지 말고 꾸준히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