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보나벤뚜라 주교 학자 기념일
가끔 마음이 닫힌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러면서 제대로 된 답변을 하기보다 그저 자기네가 해오던 일을 계속 합니다. 그런데 반응은 시원치 않은데요. 오늘 독서를 보십시오. 제물을 바치는데 하느님이 싫어하신답니다. 기도를 많이 해도 들어주지 않겠다 하십니다. 이게 뭔가요? 복음을 보십시오. “평화를 구하려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오히려 칼을 주러 왔다” 하십니다. 뭐 이런 신이 있나? 싶을 겁니다. 무엇을 놓치고 있었을까요?
요새 프란치스코 교황님에 대한 반응이 좋지 못합니다. 교회가 분열된 것 같다는 보도가 심심찮게 들립니다. 이유는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습니다. 지금 교황님이 예전 보아오던 교황님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아오던 분들은 전통적인 교리 수호에 힘썼습니다. 다원화되는 세상에서 교회를 정립하고자 애를 쓰셨습니다. 헌데 지금 교황님은 애매하고 건드리기 힘들었던 영역도 말씀하십니다. 이점이 불편하게 여겨졌고, 대단히 파격적으로 느낀 것입니다. 오늘 기념일을 맞이한 보나벤뚜라 주교님의 출신은 프란치스코회입니다. 프란치스코회는 ‘작음, 청빈의 정신’을 모토로 하고 있습니다. 기득권이 보기에 프란치스코회가 그리 달갑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같은 수도자끼리도 ‘그럼 나는 세속적으로 부자란 말인가?’ 여길 수 있을 겁니다. 지금 교황님도 프란치스코 이름을 땄습니다, 하지만 이분의 출신성분은 예수회입니다. 보수적인 수도회입니다. 게다가 해방신학을 하던 아르헨티나에서 특별한 운동을 폈다는 전적(前績)도 없습니다. 그런 분이기에 지금의 행보가 이상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그때는 보수적이었는데 지금은 왜 이러시나?’ 한편 나름 예상을 해본다면... 상황을 지켜보신 듯 합니다. 무작정 때가 아닌데도 움직이면 오해를 사거나 피해를 볼 수 있습니다. 마치 강태공처럼 낚시를 하면서 본인이 나설 때를 기다린 것처럼요. 강태공의 낚시바늘이 꼬부라지지 않았다지요. 쭉 일직선이었답니다. 즉 이 사람은 세월을 낚으면서 기다리고 있으면서 나중에 재상이 되지요. 물론 지금 교황님이 본인이 교황이 될 것을 예상하진 않으셨어도 뭔가 기다리다가 그때를 만났다는 예상도 해봅니다.
다들 ‘나는 잘하고 있다’ 고 여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에 메어있었는지 살펴볼 필요는 있습니다. 독단적인 사고에 빠진 것은 아닌가 하고요. 기존 기득권은 본인의 기득권에 취해 있었기에 그걸 깨닫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비판의 발언은 안 믿던 이들이 아닌, 이미 열심하다는 사람들에게 선포된 것이라면 우리도 예외이진 않습니다. 주님 보시기에 합당한 지 살펴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