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8주일

2024. 8. 3. 오후 2: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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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8주일

 여기엔 무엇을 하러 오셨나요? 요새 사람들은 이런 것을 원하지요? ‘바로 얻을 수 있는 것, 바로 알아들을 수 있는 것에 열광하는 시대입니다. 동영상을 보더라도 예전처럼 일관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건너뛰면서 봅니다. 드라마나 영화도 누군가 요약해 준 것을 봅니다. 쇼츠 영상을 보면서 만족합니다. 시간도 절약되고 줄거리도 금방 알아듣습니다. 남들 다 아는 것을 나만 모르면 안되니까, 바쁜 세상에 할 것도 많기에 내 시간을 할애하기 어려워 이런 방법을 쓰는데요. 그런데 이렇게 하면 다 아는 것일까요? 신앙이나 교회가 제공하는 것을 살펴보면 좀 모호한 구석이 많아 보입니다. 말씀이 이러하지요. 예수님을 보면 곧 하느님을 본 것이다 ”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배고프지 않고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하시는데 그렇다고 쌀을 주거나 돈을 주진 않습니다. 그럼 여긴 대체 어떤 곳인가요?

여러분은 추상적이다 형이상학적이다란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언뜻 드는 생각은 애매모호하다, 알 듯 말 듯 여러워 다가가려 하지만 어렵다일 것입니다. 헌데 추상의 원뜻은 애매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다양한 개별 사례로부터 그들 전체를 포괄하는 어떤 일반적인 합의를 이끌어낸 표현입니다. 그러면 추상이란 단어는 껀껀마다 불필요한 개별 사례를 제외하고 궁극적인 것만 남긴 것을 뜻하는데요. 그럼 애매한 것이 아닌 겁니다. 공통된 뭔가를 추출했으니까 정수만 남습니다. 미술에서 추상화 그림을 보면 언뜻 잘 와닿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작가나 전시관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자세히 살피면 기본구조만 남겼다는 것을 알게 되듯, 이는 진리를 표현할 때도 쓰는 방식입니다. 진리는 구구절절한 것을 나열하지 않습니다. 확실한 것은 남기고 나머지는 버립니다.

 요사이 시대가 진지하고 깊게 사고하고 숙고하는 시대는 아닙니다. 그래서 의미를 되새기거나 고민하지 않으려 합니다. 우리는 의식수준을 높일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세상이 두려워 생존의식에 빠진 경우가 많습니다.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고, 나처럼 생각하지 않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를 봅니다. 하지만 가끔 나보다 뛰어나고 나은 사람을 만나면서 거기에 위축되는 것이 아니라 나 또한 동반성장 하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나 자신만 봤던 사람이 남을 돕는 사람을 만나면서 세상은 서로가 같이 살아야 한다는 것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지요. 예전에는 형이상학이란 학문처럼 사회의 체계를 보면서 과연 그 안의 존재 근본을 연구하며 진지하게 고민한 시대였다면, 요새는 피상적이고 피부에 와닿는 것을 선호하니, 점점 사람이 어리석게 됩니다. 상대방이 말하는 것도 자신처럼 좁은 견해에 갇힌 줄 압니다. 이처럼 좁은 식견에 가로막히면 오늘 복음 말씀처럼 되묻게 됩니다. 그러면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이 사람은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보고 있을까요?

 오늘 복음은 지난 주 복음에 이어진 내용입니다. 5천명을 먹이신 기적이었지요. 하지만 기적을 보여줬음에도 그들은 못 알아듣습니다. 왜요? 그들의 인식에는 나는 먹고 사는 게 제일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이 깔려 있습니다. 물론 먹고 사는 것 중요합니다. 하지만 구조와 뼈대를 보고 삶의 근본에 대해 고민해야만 그야말로 잘 먹고 살 수 있는데요. 생각없이 살면 주어지는 것만 만족하는 노예 상태로 전락할 수 있는데요. 의식이 좁은 사람은 자기 식대로 해석하려는 사람입니다. 이런 이들은 겸손이 없고요. 자기가 뭔가 안다면서 계속 요구만 합니다. 1968년 이후 시리즈물로 계속 만들어지는 영화가 있습니다. ‘혹성탈출입니다. 사람이 원숭이에게 지배를 받는 내용이 인기를 끈 이유는, 생각을 깊게 하지 않는 지금 인류 시대를 꼬집은 내용이 들어있기 때문인데요. 2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왔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그렇게 배우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무엇을 배웠을까요? 적어도 자기 중심은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인헌동 본당 교우 여러분

오늘 세례를 받는 새 영세자들은 자신의 예전 것을 버리고, 새로운 삶이 되려 이 시간을 가집니다. 여기 모두는 세례를 받았지요. 하지만 그걸 자꾸 잊어버리는 이유는, 사람이 적응이 되면 나도 모르게 예전 욕심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여전히 내 생각으로만 똘똘 뭉쳐 있나요? 새 영세자들을 바라보며 처음 세례를 받은 그때를 다시금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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