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8주간 월요일

2024. 8. 5. 오전 7: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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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8주간 월요일. 예레 28,1-17; 마태 14,13-21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론을 읽어보셨습니까? 이는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1-9권까지는 자신의 체험, 도덕적인 방황을 다루면서 하느님 은총을 찬양하고요. 10권부터는 회심하는 주체인 자아와 기억에 대한 성찰을 통해 시간과 영원을 다루고요. 나머지는 창세기를 해석하며 인생의 궁극적인 의미와 그리스도인이 걸어가야 할 길을 다룹니다. 그중 두 번째 부분에서 그는 당신께서는 우리에게 자제를 명하시나이다. 명하시는 바를 주소서 라고 말합니다. 누구나 부끄러운 자신을 보기 어려워합니다. 대면할 용기도 없고요. 게다가 듣고싶은 말도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이 나올까요?

 1독서처럼 거짓을 들고나오는 이가 생기고요. 우리는 거기에 현혹됩니다. 비록 거짓일지라도 우리 안에서 나온 것이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 그것을 누가 당장 채워준다니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자제(自制)는 단순히 자기 욕망을 억제하는 뜻이 아닙니다. 하느님께 대한 한결같은 헌신을 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원한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내 뜻이 이뤄지길 바라고 있잖습니까? 내 안에서 거짓된 만족, 하고싶은, 듣고싶은 것만의 욕망추구는 오히려 비참한 현실을 만납니다. 가령 2015년 청소년 정직지수를 평가한 설문조사에서 우리나라 고등학생 56%10억원이 생긴다면 1년간 감옥에 가는 것도 무릅쓰겠다는 결과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정직한 지수는 낮아지고, 거짓과 부패한 사람이 성공한다고 믿는 공부만 잘하면 만사 OK라고 떠들어 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보잘 것 없는 가운데서 빵을 마련해주십니다. 왜 당신은 우리에게 뭔가를 선사해주실까요? 그나마 당신을 의지하고 따르기 때문입니다. 이 따름과 의지는 자신을 낮추면서 겸손하면서 얻어집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자제 속에서 하느님의 사랑과 뜻하심을 얻었듯이 우리가 얻고 싶은 말, 하고 싶은 것을 좀 떨어져서 봐야겠습니다. 과연 그것이 참된 것일까? 바라볼 때 거짓의 껍데기는 가고 진정한 것만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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