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 예레 31,31-34; 마태 16,13-23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본인만이 가진 힘이 있다면 뭘까요? 스스로를 믿는 마음, 자신감. 자신을 존중하는 자존감일 것입니다. 자기의 판단을 믿고, 의지하고, 여기서 뭔가 이룰 때 성취감을 가집니다. 하지만 반대로 자신감, 자존감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와 바탕, 실력이 없으면 근거없는 자신감, 근자감이 되고요. 자신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맙니다. 그러면 자존심은 뭘까요? 스스로를 높이는 마음이니, 반대로 표현하면 남을 낮춘다는 뜻이 됩니다. 자칫 오만하게 비쳐질 수 있습니다. 여기서 무엇을 주의해야 할까요?
독서에 나오듯 “나는 그들의 가슴에 내 법을 넣어주고, 그들의 마음에 내 법을 새겨주겠다.” 하십니다. 이른바 하느님의 법이 내 맘에 새겨졌으니, 천성(天性)인 양심에 따른 행동은 하느님이 주셨기에 바른 판단을 내리게 됩니다. 그리고 복음의 베드로의 신앙고백도 “스승님은 살아계신 그리스도이십니다.”를 누구 일러줘서 된 게 아니었지요. 평소 심성과 고른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내 고난을 받을 것이란 예수님의 말씀에 반박하는 베드로를 보며 우린 무엇을 깨달아야 할까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삼위일체론’ 강의에서 이런 설명이 나옵니다. ‘하느님은 참되시다(요한 3,33), 빛이시다(1요한 1,5)라는 건 육신의 눈으로 본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알아보는 빛이다. 여기서 참됨이 무엇이 찾으려 들지 마라. 찾고자 마음 먹은 순간, 육신의 어두운 이미지와 상상이 몰려와 너를 비쳐준 평온을 깨뜨려 버리기 때문이다. 그저 참됨을 듣고 빛이 너를 사로잡을 때, 번뜩임에 머물러 있어라. 그 황홀감은 잠시지만 시작이며, 힘을 일으키지만 오래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베드로는 오래 머물려 했고요. 그로인해 얻게될 고통과 손실이 떠올려져 주님을 반박한 것입니다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 중에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 이란 싯구는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그로인해 뭔가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 다가올 현실은 녹록치 않습니다.
성경의 인물도 축일맞은 도미니코 사제도 ‘강렬한 체험’ 이 있었기에 겁 없이 자신을 불태우는 열정을 보이고 탐구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을 근거없이 믿고 안주하기보다 그분이 주시는 평소의 체험과 선물에서 나를 그분께 맡겨봐야 하겠습니다. 주님과 가까워짐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