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9주일. 열왕상 19,4-8; 에페 4,30-5,2; 요한 6,41-51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워낙 다양한 삶이 있다보니 저의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을 소개하면서 각자에게 놓인 것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저는 이런 교육을 받았습니다. ①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뜻하심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라. ② 하느님이 주신 자신을 사랑하라. ③ 우리에게 주신 교회를 사랑하면서 교회의 정신을 실현하면서 하늘나라가 이미 와 있음을 느끼고 가르쳐라입니다. 저는 이것과 다르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싸워야지요. 마치 사람과 신자와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간 개개인 안에 있는 병든 영혼과 싸우는 것입니다. 마르코 복음 2장 17절에 나오지요.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병든 이는 평범한 사람과 다릅니다. ‘나는 별 탈 없어 저 사람이 잘못된 거야’ 자기 자신을 인정하지 않지요. 부정하면서 버팁니다. 헌데 세례를 받았다는 분들에게서 이런 것을 봅니다. 뜻하심을 받아들이고 사랑하기보다는, 이용해 자기의 이득을 구하는 쪽으로 변질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자기를 열고 개방하기보다, 자기 생각에 아닌 것 같으면 거부합니다. 일단 그럴 수 있습니다. 내가 세상에서 당한 게 많거든요. 이용 당해봤기에, 더 이상 당하지 않으려고 그들처럼 마음을 닫는 선택을 합니다. 그러면서 이득 가치가 있는 것에 쏠립니다. 그러면 여기서 주님을 믿는다는 신자와 안 믿는 사람과의 차이가 있어 보입니까? 회복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1독서 예언자 엘리야는 “그가 하룻길을 걸어 광야로 나갔”답니다. 이 말씀 이전 상황은, 유다의 왕 아합이 ‘엘리야를 죽일 것이라는 겁박’ 때문에 도망치는 중입니다. 당연히 겁나지요. 그러면서“주님 이것으로 충분하니 저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라고까지 기도합니다. 두려워 거부하고 싶습니다. 예수님 상황도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사명을 말씀하시자, 사람들은 그저 인간적인 눈으로만 보려 들면서 예수님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시큰둥합니다.
여기서 무엇이 필요할까요? 말씀과 성체입니다. 주님의 빵은 그저 먹는 것을 뜻함이 아니지요. 생명의 양식으로 병든 사람을 치유하고 회복하길 바랍니다. 교회는 늘 변함없는 것을 가르쳤습니다만 우리가 오해한 것은 아닌지요? 2독서 구절로 마치겠습니다. “하느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서로 너그럽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