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에제 9,1-22; 마태 18,15-20
벌써 20여년 전 개봉한 한국영화 중에 ‘친구’ 가 있습니다. 조직폭력배 세계를 다룬 작품이라 보기 힘들 수 있지만 10대, 20대 시절 성장기 시절이 나오는데요. 주인공 유오성이 맡은 준석이의 아버지는 조폭 보스입니다. 그러다보니 주변의 청년들은 죄다 건달이었습니다. 여기에 준석이의 대사가 나옵니다. ‘그때 내가 삼촌이라 부르는 인간 중에 한 명만 날 뒤지게 팼어도, 내가 지금 이렇겠는 안 살고 있을테데 내를 말리는 사람이 하나도 없더라’ 현실적으로 주변에 말릴 사람이 없었지요. 폭력배 보스 아들을 감히 누가 건드리겠습니까? 물론 어릴 때라 남을 원망하는 푸념으로 들릴 수 있지만 한편 이런 것도 보입니다. ‘내가 비록 이래도 날 좀 제발 말려줘..’ 오늘 복음처럼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타일러라” 하기 싫은, 잔소리처럼 여겨지는 깨우치는 소리는 필요합니다. 우린 나약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약함과 잘못을 뉘우치는 이는 구원을 받습니다. 미사 경문 중에서 “진심으로 뉘우치는 사람을 용서하러 오신 주님”처럼 자신이 다시 살기 위해, 몸부림치며 기회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뭔가 줘야 하는데요. 그게 당장 죽을 것 같이 괴롭더라도요. 여기에 1독서는 징벌을 내리시지만 한편 이마에 표를 받은 이는 구하십니다. 우리도 세례를 통해 이마에 인식표가 있는데요. 그럼 뭘하면서 구원받아야 할까요?
마리아 콜베 신부님은 자기를 내려놓으셨습니다. 다 살고 싶겠지만 감금 중에도 남을 살리는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신부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참됨 이끔과 사랑은 ‘두려워하지 않는 사랑’ 이란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우린 두렵습니다. 욕먹는 것, 오해 받는 것, 잔소리 듣는 것 등이죠. 하지만 그건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닙니다. 참된 사랑을 위한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쉼 없이 가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