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9주간 월요일
신앙인들은 남들과 좀 달라야 합니다. 보통사람들은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빨리 해결하려 들거나 또는 그게 안될 시 덮어버립니다. 왜냐하면 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해결한다고 해도 ‘미봉책’에 그치는 경우가 많거나 대충 수습하는 차원에서 끝맺으려 듭니다. 그런데 주님이 일하시는 방식은 좀 다릅니다. 열심한 사람과 비슷합니다. 금방 마무리 짓지 않고 ‘원인 해결’을 하려 듭니다. 당연히 시간이 길어지고 지루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원인’이란 것이 금방 드러나지 않고, 사람들도 보고 싶지 않은 것을 계속 쳐다봐야 하는 것이 고역으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이제 무엇이 필요할까요?
에제키엘서가 시작되면서 에제키엘 예언자는 어떤 환시를 보면서 부르심이 시작됩니다. 여기서 한편 그의 고난도 시작되는데 주님의 개혁은 지금의 체제가 완전히 무너져야 한다는 가르침이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사람들이 벌인 ‘하느님을 저버리고, 우상숭배와 각종 반인륜적인 범죄 등’을 행하면서도 ‘회개하지 않는 그들’ 이 오히려 선한 사람들을 내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언자는 고독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사회 체제와 순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치 도덕경에 나오듯 ‘썩은 나무 조각으로는 조각품을 만들지 않는다’ 는 말처럼 조각품을 그럴 듯하게 만들어봤자 어차피 나무가 썩었기에 조각품도 금방 망가질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도 “사람들 손에 넘겨져 죽을 것”이란 당신의 미래는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원래 주님의 자녀들은 하느님 나라에 살고 있으니 세금을 면제 받아야 하지만 세상의 우두머리라고 여기는 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니 ‘그냥 해주라’는 식으로 응대하십니다. 진정한 주인은 따로 계신데 말이지요.
저도 그런 것을 느낍니다. 다들 본당이 노후화 되다보니 고쳐야 할 것은 늘어나는데, 다가오는 업자들은 ‘미봉책’ 의 방식으로 해결하려 드니 이를 지켜보는 주임 신부님들의 어려움이 어떤 지를 말이지요. 내 맘 같지 않는 상황을 주님의 도우심으로 이겨나가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