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0주간 월요일

2024. 8. 19. 오전 11:4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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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20주간 월요일

 요새는 학교 선생님보다 학원 선생님이 더 인기가 있지요. 그래서 학교에서 학생에게서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가 있답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이렇게 잘 가르치시는데 왜 학원에 가시지 않고 학교에 계세요?’ 여러 선생님들의 유형이 있지요. 다들 잘 가르쳐주고 자신에게 관심 가져주는 선생님을 바라지만 그럼에도 학생들이 원하는 선생님 스타일은 따로 있습니다. ‘인생의 멘토역할을 해주는 분입니다. 자신들이 성장기에 있기에 방향을 알려주는 사람을 바라지요. 헌데 멘토는 듣기 좋은 말만 하지 않지요. 그래서 학생 입장에서도 그걸 견딜 만한, 들을 만한 그릇이 되어야 하는데요.

 복음에 나온 인물은 모범적인 인물입니다. 예수님을 따르고 싶어하고요. 이미 여러 계명을 잘 지켜왔습니다. 나무랄 데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여기에 부족하게 느껴지시는 지 한 마디를 더 하십니다. 급소를 찌르는 듯한 말씀입니다.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너무 과한 것을 요구하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만, 다른 복음에서는 부자청년이라고 일컫는 그를 보면 그럴 수 있는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일단 여유가 있었을 겁니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란 말처럼 형편이 어렵지 않았기에 남들은 지키기 어렵다는 계명도 잘 지켰을 것이고요. 성격도 젠틀하고, 스마트하며 무난했을 것입니다. 서울에도 부자 동네에 가면 그런 분들을 만납니다. 늘 여유 있고요. 매일 미사 참여하고요. 남들이 원한다면 베풀어 줍니다. 사람들이 좋아라 하는 게 당연합니다. 근데 무슨 문제가 있을까요? 더 큰 차원이 있는데 거기서 멈춘 게 문제입니다. 제가 229월 부임했던 첫 주일미사 강론 중에 복자 슈브리에 신부님의 말씀을 언급했습니다. 신부 중에는 나쁜 사제, 좋은 사제, 완전을 지향하는 사제가 있다고요. 나쁜 사제는 말할 것도 없고요. 좋은 사제는 여러분이 좋아하는 스타일입니다. 친절하고, 말 잘 들어주고, 성사생활도 부지런한 세상에서 전혀 문제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랍니다. 완전을 지향하는 사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사는 삶이기에, 좋은 사제 100명이 완전을 지향하는 사제 한 명 보다 못하다고 말합니다. 우린 착한 사람, 이미지 좋은 사람을 키우는 곳이 아닙니다. 성가 가사에도 있지요?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당신 뜻을 이루길 희망합니다. 진정한 당신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지금과 다른 세계에 놓여야 하고, 그걸 받아들일 때 시각이 열립니다. 그래야 진정 어려운 사람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먼저 버려야만 다른 큰 것을 움켜쥘 수있는데요. 허나 그는 거기서 멈췄습니다. 독서 내용이 상징이 많아 불편할 수 있지만 내 아내가 죽었다 는 표현은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를 뜻합니다. 가장 사람들이 신성시 여긴 곳이 폐허가 될 것이란 예언의 이면엔 본인의 회개가 필요함을 강조합니다. 사람들은 좋아하지만 정작 하느님 눈밖에 난 이들이 있잖습니까결국 우리에게 이런 것을 알려줍니다. ‘듣기 좋은 말보다 필요한 말이 나를 살린다고요. 감언이설(甘言利說)은 나를 정체시킵니다. 착각하게 만듭니다. 우리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지요. 말은 그럴 듯 하지만 결국 안 하는 사람들요하지만 행동하는 사람이 진짜배기인데요

 주님도 그 사람이 성장하길 바랬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말을 하셨지만 그는 가지고 있던 것에 발목이 잡혔기에, 감히 놓고 다른 단계의 차원을 못 만나고 말았는데요. 가끔 학생 중에도 그렇지요. ‘난 이 성적 정도면 괜찮아하는 친구가 있는 반면, ‘또 다른 뭐 없나?’ 하며 들고 파는 이가 있지요. 설령 2보 전진, 1보 후퇴하더라도 계속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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