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아우구스티노 주교학자 기념일

2024. 8. 28. 오후 1: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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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우구스티노 주교학자 기념일

 ‘신앙을 가진다는 뜻은 뭘까요? 독서 말씀을 보면서 살펴보지요. 무질서하게 살아가면서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을 따르지 않는 형제는 누구든지 멀리하십시오.” 무질서하지 않는 삶을 살려면 나름의 기준과 건전한 사고방식이 필요할 것입니다. 매번 남들이 하던대로 하지 않는 자세가 될 때 그 신앙을 우릴 깨우쳐주는데요.

 아우구스티누스가 태어난 351년 경은 아직 그리스도교의 교리가 확실히 정립되지 않은 때였습니다. 인근 지역에서 들어온 불교, 바빌로니아 신화, 조로아스터교의 이원론적인 세계관에 영향을 받아 생긴 마니교가 그를 사로잡습니다. 사람의 본능이 그렇지요. 불안하고, 이해가 잘 안 가는 것에 대해서는 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니교에는 선악 구분이 분명하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모든 이단의 그렇듯 사람의 본능상 확실한 것에 이끌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명확하기에 또 문제가 되기도 하지요. 그렇다고 의문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니교의 모순이 보였는데요. 답을 찾지 못한 그는 낙담을 하면서 방황을 합니다. 남다른 똑똑한 그를 채워줄 만한 뭔가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죠. 그런 그에게 암브로시오 주교는 남다르게 다가옵니다. 그분의 강론이 출중하거나 재밌는 것은 아니었지만 단지 성경 이야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의 철학 이야기를 곁들이면서 박학한 지식에 탄복을 합니다. 마치 다른 세계 사람처럼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암브로시오의 가르침에는 인간 영혼은 올바르게 하기 위해서 하느님과 가장 가까운 선()함을 늘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시 방황했던 아우구스티노는 그로인해 회개하과 방황을 청산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라고 두 번이나 언급됩니다. 신앙을 포함해 모든 것은 자칫 오염되고 퇴보합니다. 그럼 오염속에서 청정함을 유지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내가 하느님과 일치되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도와 달라는 사람을 봐도 무덤덤한 경우가 있는 이유가 악에 빠진 경우라 그렇습니다. 악은 사람을 무감각하게 만듭니다. 감각이 무뎌지게 만들어 선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에페소서 28절에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이는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인간의 행위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습니다.” 요새 사람들은 예전과 달라졌습니다. 자기의 허물, 약점, 부족함을 깨닫거나 남이 그것을 알려주면 '자존감이 떨어졌다'고 말하거나 '자존심이 상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자기 기분이 더 중요하지, 자신의 허물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기분에 심취해서 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어떤 상황인지를 못보거나 못들으면, 진실을 마주 대하지 않으려 듭니다. 우린 잘 들으려 왔습니다. 아우구스티노도 자신의 면을 보려 들었기에 부르심의 삶으로 갔는데요. 우리도 그래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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