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1주일
오늘은 여러분께 중요한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잠시 제가 강론을 하고요. 다음으로 본당 총회장님과 재정분과장님의 브리핑을 통해 우리 본당에 드러난 현실적인 차원을 소개하고 협조를 구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일부러 강론 시간에 하는 이유는 오늘의 말씀과 앞으로 소개할 내용이 맞닿았기 때문입니다. 현실적인 문제점을 해결해 나가는 것이 교회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시작은 이러했습니다. “이 말씀을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그렇습니다. 진실은 불편한 부분이 있습니다. 게다가 2독서처럼 “아내는 주님께 순종하듯이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란 말에 도대체 ‘오늘 같은 21세기에 이런 내용이 가당키나 하겠는가?’ 여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경전이 시대와 세대를 넘나들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쓰인 글자에 모든 것이 있진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 숨겨진 것을 봐야지요. 2독서 마지막에 이렇게 쓰여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를 두고 이 말을 합니다.” 중요한 것은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 같은 옛날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 중에 이런 이들이 있습니다. ‘주님은 따르겠지만, 교회의 명령은 따르고 싶지 않다.’ 대단히 이율배반적이고 모순적인 행동이지요. 그리스도를 통해 교회가 생겼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통해 참된 구원이 실현됩니다. 성사 생활로 시작해 사람의 탄생인 세례부터 죽음인 장례미사까지 다루지요. 헌데 이 둘을 따로 떼서 본인이 좋아하는 것만 하려드는 시도는, 부분만을 선택하려는 시도이기에 결국 본인이 무엇이 중요한 지 모르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여기려면, 내가 믿는 이곳이 계속 이어지려면 무엇부터 지켜야 하는 것인지 알아야 하는데요. 사랑이 가능하려면 시스템을 구축해야지요. 요새 소설과 영화 중에 ‘한국이 싫어서’ 란 작품이 왜 나왔겠습니까? 어른들이 제대로 일을 안하니 젊은이들이 이민까지 시도하는 일이 생기잖습니까?
교회가 참되게 이어질 수 있도록 이제부터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총회장님과 재정분과장님 나와서 브리핑 해주십시오.
(교적 정리 문제, 현재 교무금 문제 소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