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2024. 9. 16. 오후 1: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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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우리가 왜 하느님을 믿을까요? 너무 뻔한 질문같지만 수 많은 역사동안 이 질문이 유효한 이유는, 우리 내부에 들어있는 뭔가가 항상 나를 그릇되게 움직이기 때문인데요. 여기에 다산 정약용이 윤종심이라는 사람에게 쓴 글을 소개할까 합니다.

 세간의 여러 사물은 대개 헛것인 경우가 많다. 초목 중에 작약은 꽃이 한창 피었을 때는 지극히 참되고 보배롭기 짝이 없다. 하지만 시들어 떨어지고 나면 진실로 허깨비일 뿐이다. 소나무와 잣나무가 비록 오래 산다 해도 수백 년의 사이에 지나지 않는다. 도끼에 찍혀서 땔감이 되지 않으면 또한 바람에 꺾이거나 벌레 먹어서 죽고 만다. 이 같은 종류가 그러한 줄은 모든 선비가 다 안다. 다만 유독 토전(土田), 땅에 대해서 이것도 허깨비에 지나지 않은 줄은 아는 자가 드물다. 세속에서 밭을 사거나 집을 마련하는 것을 실답고도 든든하다고들 한다. 사람들은 토지란 것이 바람으로 불려버릴 수도 없고 불로 태워버릴 수도 없으며, 도둑이 훔쳐갈 수도 없어서 천년 백년이 지나도 없어지거나 손상되지 않는다고 여기므로, 무릇 이것을 마련하는 것을 두고 든든하고 실답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사람들의 토지 문서를 살피다가 내력을 조사해보니 매년 1백 년 이내에 주인이 바뀐 것이 문득 대여섯 번에 이르거나, 심한 경우에는 일고여덟 번 또는 아홉 번까지 되었다. 그 성질이 가만히 있지 않고 잘 달아나기가 이와 같았다. 어찌 남에게는 가벼우면서 나에게만 오래 충성하기를 바라, 아무리 쳐도 깨지지 않는 물건이 되리라 믿는단 말인가? 창기나 노는 여자는 여러 번 남자를 바꾼다. 그런데도 내게 이르러서는 어찌 홀로 오래도록 나만 지켜주기를 바라겠는가? 토지를 믿는 것은 창기의 정절을 믿는 것일 뿐이다.

 다산은 제자들에게 세상 사람들이 중시하는 것들이 사실은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고 합니다. 재물과 권세가 그렇지요. 그 속에 몸담고 있으면 마치 천년만년 갈 것처럼 여깁니다. 꽃과 나무가 오래가지 못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으레 그런 줄로 알지만 땅과 집은 한번 사두기만 하면 영원할 것이라 의심치 않습니다. 허나 다산은 예전 곡산 부사 시절에 고을의 토지 문서를 조사하면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100년 사이에 최소 대여섯 번에서 심하게는 아홉 차례나 주인이 바뀐 토지 문서들을 보았던 겁니다. 고작 100년 사이에 말이지요. 정말로 믿지 못할 것이 바로 땅이요 토지 문서였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부자는 더 큰 창고를 지으며 앞으로도 무탈하게 지낼 것이라 여기지만 실제 생명의 주인은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여기에 예외이지 않지요. 하느님보다는 맘몬, 제물의 신, 돈의 신을 더 따르는 우리를 보곤 하니까요여기에 우리보다 먼저 가신 분들을 떠올려보며 살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함을 주셨지만 나는 제물에 갇힌 것을 택하는 우리의 현실을 보며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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