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 기념일
그동안 예비자 교리 등에서 많이 다루지 못한 부부이 있습니다. 기도-삶과의 연관관계입니다. 변호해보는 입장에서는 ‘워낙 교육시킬 것은 많고 시간은 부족하니 어쩔 수 없다’ 고 여길 수 있겠지만 실은 그러다보니 아는 교리라는 것이 삶이 빠진 ‘사변적’으로 흘렀던 것도 사실입니다. 사변(思辨)이란 밀은 실천이나 경험은 없이 생각만으로 뭔가 이루는 방식입니다. 당연히 실천과 경험을 중시하는 입장에서는 탁상공론(卓上空論)으로 치부할 수 있는 문제가 됩니다.그러다보니 자기 스스로 실력은 갖추지 못하고 어떤 자리를 탐하거나 가르치려 드는 자세가 나올 수 있습니다. 이는 교만하고 위선적인 자세로 흐를 수 있는데요.
오늘 복음에 보면 “눈 먼 이가 눈 먼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느냐?” 면서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라고 하십니다. 들보는 건축용어로 빔(Beam)이지요. 집 지을 때 하중을 견디는 기둥같은 건축물입니다. 엄청 크고 강한 구조물입니다. 즉 여기선 위선을 다루고 있습니다. ‘자기는 못 살면서 남에게 강요하는 내용을 다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무엇이 필요할까요?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님은 현재 터키, 이제는 튀르키예 지역인 안티오키아 출신입니다. 이곳은 화물의 집산지, 교역의 거점이며, 동서양 문화가 만나고 로마 제국의 군사 요충지였기에 사람들이 빈번히 오가고, 그에 따른 문란한 생활도 빚어진 곳입니다. 마치 강남지역처럼 선진 문물도 만나지만 인간이 가진 허영이 많은 곳이기도 하였기에 요한은 먼저 금욕적인 삶을 토대로 자신을 다지며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통해 가난과 노예제도를 극복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여깁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구원에 책임감을 지지 않는다면, 우리 스스로 참된 그리스도인이 못될 것이며 교회는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바오로도 말합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 단순하게 말로만 뭔가 전한다는 뜻이 아니라 “나는 내 몸을 단련하여” 라는 표현처럼 본인 스스로 삶을 제대로 살려는 의지도 보여집니다. 우리도 입으로만 신앙생활 하지 말고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