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갈라 1,8-12; 루카 10,25-37
불경을 외우기 힘들어하는 대중을 위해 지었다는 원효대사의 경문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이 있습니다. 이는 극락에 있는 부처님의 이름인 아미타불을 부르고요. 대자대비한 부처님 다음가는 보살인 중생을 구제하는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염불로 이분들께 귀의하겠다는 다짐이 들어있답니다. 더 들어가면 원효스님은 누구나 ‘나무아미타불’을 10번만 외우면 극락정토에 태어날 수 있다는 관념을 한반도에 정착시킨 분이지만 10번만 외우면 된다는 것에는 이런 것이 포함되어 있답니다. 모든 중생에게 자비의 마음을 품어야 하고, 불교의 가르침을 지키겠다는 마음을 품고, 인욕(忍辱), 난관과 고통을 참는 마음이 분명해야 하고, 명예와 이익에 끌리지 않아야 하고, 모든 지혜로운 마음을 일으켜야 하고, 모든 중생을 존중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세간의 잡담에 재미 들지 않아야 하고, 산란한 마음을 멀리하고, 부처님을 바르게 관찰하여 정신이 통일되어야 한답니다. 어렵지요? 이는 단순히 10번 염불을 하는 것이 아니고, 그 10번에 철학적 의미를 부여한 것입니다. 이쪽이 이러하다면 우리 기도도 단순히 쓰윽 외우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되겠는데요.
오늘 복음에 나온 사마리아인을 보십시오. 강도를 만나 초주검이 된 사람을 보지만 부끄럽게도 사제와 레위인은 못본 척 피합니다. 사랑을 가르치고 제일 모범을 보여야 할 사람이 피한다는 말은 그야말로 위선을 보여줍니다. 여기에 이방인이지만 사마리아인이 당시 치료법인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매줍니다. 게다가 노새에 태워주고 여관 주인에게 숙박비와 돌봄 비용까지 내는데요. 여기서 우린 평소 어떤 사랑을 하느냐? 라는 질문에 부딪히게 됩니다.
사실 우리의 묵주기도는 대단히 단순한 기도입니다. 계속 반복하지요. 성모송을 주로 외우지만 실은 그 안에는 각각 주님의 삶의 신비가 들어있습니다. 환희, 고통, 영광, 빛의 각 신비에서 다양하게 처해진 주님의 처신과 태도를 보며 우리도 주님처럼 이겨나가길 바라는 기도이지요. 그렇다면 이 기도는 더 이상 단순한 기도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불교에서 단순한 기도지만 실제로는 정신을 통일하고 사랑을 실천하려는 모습을 보며 나의 묵주기도도 그러하십니까? 사마리아인의 사랑을 보며 우리도 실천하는 사랑이 되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