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7주간 수요일
모든 것이 그렇듯 한꺼번에 이뤄지진 않습니다. 창세기의 7일 동안 창조 이야기가 날마다 뭐가 생겨나듯 짠~하고 나오지만 “천년도 당신 눈에는 지나간 어제 같은” 창조주 하느님의 사업이 인간의 눈에 보기에 더디 긴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우리 생각으로는 당장 해치우듯 해내고 싶겠지만 실제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오늘 독서의 말씀을 보지요. 예수님은 모든 민족의 구원을 위해 오셨지만 베드로 등은 여전히 유대인 관습에 얽매여 있었습니다. 이방인에게 유대인 관습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아직 주님의 의도를 다 헤아리지 못했고요. 그들도 준비가 덜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당장 해결되고 싶다’ 는 마음에 번듯하고 시스템이 잘 갖춰진 곳을 선호합니다. 회사건, 성당이건 간에 큰 곳을 원하지요. 당장은 편합니다. 그러나 진짜 성공했던 이들은 ‘과정 중에 있던 시행착오’ 속에서 가르침을 배웠습니다. ‘이것만 할 줄 알면 돼’ 이게 아니었던 것이지요.
초기 교회 역사를 배운 이들은 압니다. 지금의 미사가 처음부터 이런 모습도 아니었고요. 이것을 명명(命名)하는 단어도 참 많았다는 사실입니다. 거듭나면서 그 시대 사람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정도에 따라 시작되어 점차 수준을 높여 나갔습니다.
오늘 한글날입니다. 처음부터 우리에게 글이 있던 민족이 아니었지요. 한 사람으로 인해 생겨났고요. 많은 이들이 수고하며 그를 따랐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양반들은 한글을 쓰지 않고 아래 것이나 사용하는 거라 치부하였습니다.그런 세월 속에서 버텨왔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진정 소중하다면 뭔가 우리도 해야 하는데요. 정작 우리가 해야 하지만 스스로 두려워 하지 못하거나 안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분의 가르침이 점차 퍼져나가도록 받은 은총을 통해 두려움 없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