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장수하고 오래 사는 것을 우린 복(福)이라고 말들을 합니다. 하지만 교회는 오래 사는 것을 좋게 칭송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거기엔 ‘무엇을 하며 사느냐?’ 란 더 중요한 문제가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기념입니다. 소화(小華)데레사. 작은 꽃으로 불리웠고요. 이는 갈멜을 개혁한 대 데레사 성녀와 구별되게 불렀습니다. 14살 때부터 수녀가 되고 싶어서 주교님에게까지 졸랐지만 ‘하느님께서 원하시면 입회하겠지’ 라는 말을 듣고, 결국 그 다음 해인 15살에 들어갑니다. 그녀의 생이 다하는 24살까지 거의 10년의 봉쇄수도원 기간을 살면서 어떻게 선교의 수호자라고 불리게 되었을까요?
잠시 성가책 292번을 살펴보겠습니다. 후렴 부분에 보면 ‘주 사랑의 산 절정에 달하신 데레사여~’ 라고 되어 있지요? ‘사랑의 산’ 이 뭘까요? 여기엔 스토리가 있습니다. 그녀가 기도를 하고 환시를 만납니다. 여기에 ‘무엇을 원하느냐?’ 란 질문을 받자, 데레사는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사랑의 절정에 달하는 높은 곳으로 데려가 주십시오” 라고 청합니다. 데레사가 바라는 건 오직 하나. 주님의 사랑을 만나는 것이었고요. 그 안에 있기만을 원했습니다. 그 하나만 청했지만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나올 수 없는 봉쇄 수도원에서 가만히 있으면서 세계 곳곳에 있는 이들을 위해 기도해주고요. 그 기도로 인해 힘을 받는 이들, 변화되는 기도의 힘을 보여준 그녀를 통해 그녀가 갇혀있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이에게 개방된 이가 되었고요. 그 사랑이 모두에게 퍼져 나갈 수 있었습니다.
물론 현실은 힘듭니다. 우리가 이슬만 먹는 사람은 아니니까요. 욥처럼 자기 생일을 저주할 만큼 비참할 수 있고요. 자기들 앞길을 가로막는 사람들을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 내려 불살라 버리길 원하십니까?” 라고 응징을 가하는 말을 뱉어내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진정한 힘은 뜻 모를 상황을 껴안는 주님에 대한 신뢰어린 사랑이 있을 때, 지금은 잘 몰라도 나중에는 헤아릴 수 있을텐데요. 세상이 삭막한 이유는 어쩌면 사랑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요? 주님이 제자를 말리신 이유도 그런 이유일테니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