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8주일.

2024. 10. 12. 오전 12: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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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28주일. 지혜 7,7-11; 히브 4,12-13; 마르 10,17-27

 잠시 제 얘기를 할까 합니다. 아직 신학교에 가기 전이었습니다. 막 군대 제대를 하고 밤에는 극단 공연장에서 연습하고, 낮에는 알바를 뛰면서 간혹 수도원을 찾아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온탕, 냉탕을 다니던 중 같이 일하던 사람에게서 훅하니 들어온 한마디의 말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첫 시작을 잘해야 해요. 시간 많다고 너무 돌아다니면 결국 자기가 뭘 해야 할지 모르거든요..’ 뭘 알고나 있는 듯 말하던데요. . 저는 그때 방황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고 싶은 것과 뭔지 잘 모르는 것을 동경하며 저울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연극 생활을 한 지 몇 년 되지 않았기에 안다고 할 수 없었고요. 하느님께 자기를 맡기는 것이 좋아 보이긴 했지, 그게 정확하게 무엇을 뜻하는 지도 몰랐습니다. 어쩌면 반대로 너무 많이 알았으면 선택하지 못했을 겁니다. 거기서 만날 리스크를 먼저 알아버리니 말이죠. 그 부정적인 정보가 제가 선택을 못하게 막았을 겁니다. 역설적이지만 그 분야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괜한 동경이 나를 일단 움직이게 만드는데요. 예전 예비 신학생을 담당할 때 일입니다. 중학교 1학년 담당을 맡았던 저에게 메일이 왔습니다. 학사님~ 제가 이 길을 가는 게 맞을까요?’ 물론 그 학생의 처지나 생각을 제가 어떻게 다 알겠습니까? 하지만 할 수 있는 말은 있었지요. 저도 잘 모르지만 이 길을 가고 싶다는 마음의 기울어짐이 시작이 아닐까요?’

 물질주의, 자본주의 세상에서 그것이 주는 맛이 뭔가 자신을 만족시켜 주지 않는다고 여기는 이들이 있습니다. 돈도 써보고, 온갖 놀거리를 찾으며 정신 혼미한 술도 마시고. 여러 이성도 만나보지만 뭔가 채워지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의 템플 스테이나 지방 수도원에서 시행하는 젊은이들의 피정에 참여가 그치지 않는데요. 와이파이도 없고, 도시와 다르게 불편한 삶을 일부러 찾는 이유가 뭘까요? 아마도 물질이 주는 한계를 봤기 때문일 것입니다. 편하긴 한데 뭔지 미진하고, 자유롭긴 한데 이게 맞나? 싶은 때가 있지요. 그냥 하던 대로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엔 내 마음이 채워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오지요. 온 세상의 금도 지혜와 마주하면 한 줌의 모래이고, 은도 지혜 앞에서는 진흙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무엇을 만났기에 금과 은이 모래와 진흙처럼 여겨졌을까요?

 100년 전에 살고 2022년도에 성인이 되신 샤를 드 푸코 성인이 있습니다. 이 사람도 방황을 참 많이 했습니다. 어릴 때 부모를 잃고, 사랑을 모르고 자라면서 신앙을 거부하고 방황한 그는, 자신의 어딘가가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프랑스 군인인 그가 알제리에서 만난 어느 무슬림 교인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서 충격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모습이 세속적인 어느 일보다 진실되고 위대한 모습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가 귀국해서 뛰어난 학자이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본당 사제로 살던 위블랭 신부를 만납니다. 그에게 그는 종교란 무엇입니까?’ 라고 묻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무릎을 꿇고 죄를 고해하라는 고해성사를 시킵니다. ‘빛으로 나아가려면 먼저 자신을 참회하고 마음 속을 보라고 시킨 겁니다. 물론 내키진 않았지만 일단 따릅니다. 그러면서 본인이 돌아온 탕자처럼 너무 인생을 돌아갔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여기에 그는 고백합니다. 의심이 많은 저는 모든 것을 하루 아침에 다 믿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의 고해 신부님의 충고는 의혹이 드는 제 마음의 구름을 흩어버렸습니다 그는 자신을 막아온 걸림돌을 그제서야 봤던 것입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참다운 빛을 만나고 싶었다는 갈망이 있었음을 알아차리는데요. 그러면서 그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가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인헌동 본당 교우 여러분

 저는 지혜로운 삶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건 말씀드릴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본인이 열린 만큼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식은 집어넣어 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혜는 내 마음이 열려서 그분을 초대할 때 시작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 많은 시간 동안 어떤 이는 그것을 깨닫고 체험하면서 행동으로 옮겼고요. 여전히 어떤 이는 자기 안에 갇히며 살았는데요. 여러분은 가진 것을 내려놓을 용기가 있습니까? 당장 고통처럼, 죽는 것처럼 여겨질지 모르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지요. 번데기가 껍데기를 벗고 나비가 되듯 여러분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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