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9주간 목요일

2024. 10. 24. 오후 3:4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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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29주간 목요일

 뭔가 배우는 사람 입장에서 불평을 터뜨리곤 합니다. 비슷한 것을 가르치면서 선생님들마다 다르게 전달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하느님께 기도하는데 누구는 이냐시오 방식, 프란치스코 방식, 갈멜 방식 등 다들 다른 이야기를 한다고 여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엔 나름의 특질이 있습니다. 그 시대 환경과 문화, 배경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것입니다. 마치 같은 산을 오르더라도 다양한 코스가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도 같은 시작점은 있는데요. 먼저 자신을 잘 비워내야 하는 점입니다. 그래야 채우더라도 체계있게 갖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사이 배우는 학생들 방식은 선생님을 평가하는 방식이 되어 있습니다. 이미 수 십년 전부터 학교에서는 강의 평가서라고 학생이 교수를 평가합니다. 학기마다 하지요. 좋은 수업을 시키겠다는 학교의 방침도 있겠으나 한편으로 학생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음 학기에 그 강의는 없어집니다. 그래서 이런 문제점도 있지요. ‘과연 학생의 시선에서, 선생님의 모든 것을 다 파악할 수 있을까?’ 여기에 듣는 우리의 어떤 반응과 자세가 필요할까요?

 오늘 예수님 말씀은 상당히 불편하고 언짢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살펴야 할 점은 듣기 좋은 가르침이 아니라 필요한 말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부터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이 그랬지요. ‘필요한 말의 뜻은 자기 영혼을 주의깊게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순간 기분 감정에 의한 반응보다 두렵고 떨리지만 참된 구원이 뭔지 보는 방식을 택해왔습니다. 비록 그걸 표현하는 것이 불편할 수 있지만요. 이는 상당히 문학적인 방식입니다. 문학의 표현은 그럴 듯하게만 말하지 않습니다. 상당히 사실적으로 표현하고요. 비유나 은유처럼 알 듯 말 듯 말하기도 합니다. 요사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의 책도 표현이 상당히 세밀하면서 불편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욕구 안에 그런 게 있고요. 폭력을 행사하는 행동 또한 상당히 거칩니다. 그렇다고 그런 게 없다고 할 수 없지요. 마치 집안이 분란이 일어났는데 그게 잘못된 것인 것을 알면서 더 큰 화가 번질까 두려워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행동하면 계속 잘못된 악순환의 고리가 벌어질텐데요. 오히려 제대로 된 질서를 바로잡는 시도가 훗날의 안녕을 도모하는 지혜로운 처사인데요. 독서에 나온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힘을 통해서 더 큰 효과를 얻어주실 수 있는 분께 맡기며 나의 자세를 고쳐가야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 기분보다 현재 상황을 보며 참된 진실을 인정하고 찾아나서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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