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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흘러가는 사안을 어떻게 보십니까? 한심합니까? 답답합니까? 아니면 관심이 없나요? 사람이 살려면 당면 사안의 문제점을 잘 봐야 하는데요. 2차 대전 때 참혹한 참상을 다룬 ‘25시’ 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국내 번역도 되었고요. 영화로도 만들어진 유명한 작품입니다. 루마니아 출신 작가, 콘스탄틴 게오르규는 이 소설을 쓰고 정교회 신부가 됩니다. 그가 이런 말을 합니다. ‘제가 20대 때 잠수함에서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그땐 산소측정기가 없어서 산소에 민감한 토끼를 잠수함에 태웠어요. 산소가 모자라면 토끼가 사람보다 여섯 시간 먼저 죽지요. 졸병인 저는 토끼가 없는 잠수함 밑바닥에서 일하기도 했는데요. 예민한 편인 제가 괴로워하면 사람들은 잠수함에 산소가 부족하다고 판단했어요. 그때 전 시인이 왜 인류에게 유용한 지 깨달았습니다. 시인이 괴로워하면 그 사회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이죠...’ 이 신부님 말씀이 맞는 것이 시대의 괴로움은 항상 시인의 마음을 몰락시킵니다. 한 편의 시에는 시대의 시름이 담겨 있지요. ‘빼앗긴 들에도 봄이 오는가’ 를 외친 이육사나 윤동주가 서시에서 외친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했다’ 라고 말한 것은 인간이 가진 고뇌를 언어로, 자연을 비추어 표현하기 때문인데요. 군사독재 때 김지하 시인이, 세월호 사건 때 많은 시인들이 그렇게 시를 토해냈지요. 여기서 그가 체험한 소통 부재와 독선으로 막혀버린 사회를 잠수함으로, 이런 사회 기류를 감지하는 무언가를 토끼로 동시에 표현하고 있습니다만, 한편 이런 걸 봅니다. ‘나는 이 시대에 나름의 처세술을 부리며 점차 딱딱해지고 굳어진 잠수함인가? 아니면 한구석에서 잠자코 숨 쉬는 토끼인가?’ 둘 중 하나일 수도, 둘 다 일수도 있지요. 문제는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누군가는 잠수함의 토끼가 되어야 하는데요.
세상이 암울하고 답답할수록 목소리를 내야 하지만 한편 되어가는 상황을 보자니, 한심해서 그냥 입다물고 체념하기도 합니다. 여기 무엇이 필요할까요? 복음에서 예수님 앞에서 부르짖은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거지를 보겠습니다. 그는 외칩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그는 눈이 멀었답니다. 하지만 그는 일부러 더 크게 외칩니다. 도움을 얻기 위해서죠. 남들이 조용히 하라고 말리는 와중에서요. 사람들 대다수는 조용한 것 좋아하지요. 하지만 조용하다고 좋은 걸까요? 원하는 간절함이 왜 없겠습니까? 여러분은 조용히 하려고 오신 분들 아닙니다. 다들 원하는 게 있어서 오셨습니다. 남들은 그걸 기복신앙으로 부른다고 해도 내겐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뭘 해야 할까요? 예. 빌어야지요. 오늘 이 사람처럼 말입니다. 수능시험이 다가오고요. 나름 면접과 테스트를 거쳐야 하는 이 시기에 내가 가진 실력만으로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내가 실수할 수 있고요. 게다가 부정과 인맥이 동원되는 세상인데요.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마음으로 바르티매오는 외칩니다.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라고요. 이걸 욕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우리 관악구 지역 동네는 어려운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다른 곳보다 성령 기도회 센터도 있고요. 삼성산 성지 기도회 세미나에도 많은 분들이 모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들려주는 현실의 참혹함도 듣습니다. 그 사실을 내가 들은 적 없다고, 없는 게 아니지요. 다만 눈 감았을 뿐, 나하고는 관계가 없다고 여겼을 뿐이지요. 그래서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조용히 하라고 외치는 이들이 지금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현실은 무엇일까요? 여전히 어려운 이들이 우리 주변에 많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잠수함과 토끼처럼 내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져 가는데도 그걸 감지하지도 못하면서 괜시리 연약한 동물인 토끼를 데려다가 죽게끔 만든다는 점입니다. 나를 쳐다보지도 않으면서 대신할 희생물만 찾는다는 문제이지요.
사랑하는 인헌동 본당 교우 여러분
10월 한달 간 우리가 왜 묵주기도를 했겠습니까? 우리의 바람을 중재해달라고 간청한 것이지요. 이번 주부터 위령성월입니다. 죽음을 염두하지 않는 사람은 지혜가 없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자신에게 놓인 한계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남들의 희생을 생각하지 않은 사람은 배려없고 잔인한 사람입니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내가 여태껏 살아올 수 있었다는 사실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겐 고맙게도 내민 손을 잡아줄 주님이 계십니다. 나의 눈을 뜨게 해주시고 일으켜 주십니다. 믿음과 사랑으로 기적을 만나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나의 잘남을 드러내기보다 그분을 통해 얻은 배려와 사랑을 늘 감사하며 전해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