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민요 중에는 ‘노동요’ 가 있는데요. 여러 방식에서 메기고 받는 형식으로 이뤄집니다. 누가 선창을 하고, 뒤 후렴구는 반복을 하면서 따라하는 방식이지요. 우리가 잘 아는 ‘쾌지나칭칭나네’ ‘옹헤야’ 등이 그런 예입니다. 힘든 일을 너무 힘들지 않게 달래려고 부른 노래였습니다. 미국 블루스에도 비슷한 방식이 있습니다. ‘call & response’ 라고 부르고 대답하는 방식은 동서양이 교류가 없었음에도 민요에는 5음계 등이 쓰였다는 점과 함께 비슷한 면이 많은데요.
노래가 그렇듯이 기도의 삶도 인간의 삶의 방식도 비슷합니다. 혼자하기 보다 같이 하길 권장합니다. 독서에서 하느님은 “너에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네가 가야할 길을 인도한다” 하시며 함께 뭔가 하길 바라십니다. 복음도 “피리를 불어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 처럼 반응이 너무 없는 것에 대한 원망도 들어 있습니다.
서로가 함께 하는 것은 특히나 개인주의 시대에도 힘이 되어줍니다. 그런 관계가 홀로 내버려진 것 같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저도 신학생 시절, 기도를 막 하던 무렵, 시편 27장 말씀에 한동안 머물 수 밖에 없던 적이 있습니다. “주님께 청하는 단 하나 나의 소원은 한평생 주님의 성전에 머무는 그것뿐, 아침마다 그 성전에서 눈을 뜨고 주님을 뵙는 것이 나의 낙이라” 는 말씀은 진정 내가 뭘 원하는 지 대변해주는 말씀이었고요. 힘들고 방황할 때마다 내가 정작 어디에 있어야 할 지를 알려주셨습니다. 그러기에 기도하며 주님과 관계를 맺고 있음에 기뻐할 수 밖에 없었는데요.
오늘 루치아 성녀도 홀로 있으면서 동정을 결심한 계기는 어떤 기쁨보다 주님과 함께하는 것을 견줄 수 없었기에 그런 다짐을 가졌을텐데요. 그 어떤 것도 대신할 수 없기에 하느님을 선택한 것입니다. 우린 홀로 있는 이들이 아닙니다. 그러니 관계 안에서 사랑을 들여다봐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