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2주일. 사회교리주간. 인권주일
안녕하셨습니까? 라고 감히 인사드릴 수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난 수요일 일이 벌어지고서 순간 탄식이 쏟아졌습니다. ‘국가의 지도자가 실력도 없지만 운도 참 없다’ 라고요. 실패한 쿠데타라서 그런 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번 주 맞이하는 주일이 사회교리주간, 인권주일이잖습니까? 우리나라만 해도 전국 각 본당마다 신부님들이 이런 상황 강론대에서 무슨 목소리를 낼지 뻔하잖습니까? 잠시 시계를 거꾸로 돌려서 예전 사건을 소개할까 합니다.
1971년 12월24일 밤, 성탄 자정 미사가 전국에 생중계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김수환 추기경님이 2년 전인 1969년 추기경에 임명되었기에 국민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던 때였기 때문입니다. 강론대에 서신 추기경님은 축복과 찬미 대신 뜻밖의 발언이 쏟아져 나옵니다. “정부와 여당에게 묻겠습니다. 비상 대권을 대통령에게 주는 것이 나라를 위해서 유익한 일입니까? 그렇지 않아도 대통령한테 막강한 권력이 가 있는데, 이런 법을 또 만들면 오히려 국민과의 일치를 깨는 것 아니겠습니까?” 김 추기경은 그해 3선 개헌으로 7대 대통령에 취임한 박정희 대통령의 장기 집권 기도를 정면으로 비판한 겁니다. 텔레비전을 보던 박 대통령은 방송 중단을 지시했고 책임자는 옷을 벗게 됩니다. 10·26 사건으로 ‘서울의 봄’이 왔지만, 추기경님은 자신의 삶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이라고 표현한 ‘광주의 5월’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그때도 비판은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12·12 쿠데타 성공 뒤, 추기경님에게 인사차 찾아온 전두환 소장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서부 활극을 보는 것 같습니다. 서부영화를 보면 총을 먼저 빼든 사람이 이기잖아요” 전씨는 표정이 굳은 채 돌아갔다고 합니다. 그 때문인지 이후 광주에서 학살극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서 당시 계엄사령관이던 전씨를 찾아갔지만, 제대로 얘기 나눌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고 합니다. 물론 이런 광경을 다 좋아라 하진 않았지요. 한쪽에서는 교회가 미온적 태도를 버리고 더 과감하게 민주 투쟁에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고요. 다른 쪽에서는 정치를 좋아하는 추기경이 젊은 신부들을 부추겨 데모를 한다고 비판합니다. 그러면서 정부와 함께 교황청에 추기경을 모함하는 탄원서를 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김 추기경님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한 치의 의심도 없었습니다. 자신의 삶에서 절대적인 판단 기준이었던 하느님을 중심에 놓고 사람을 위해 일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은 모두 존엄하고요. 인간이 그런 대접을 받는 세상을 만드는 일은, 사제의 당연한 임무이기 때문입니다. 나중 추기경님은 회고록에 이렇게 밝혔습니다.
“70~80년대 격동기를 헤쳐나오는 동안, 진보니 좌경이니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정치적 의도나 목적을 갖고 한 일은 없다. 가난한 사람들, 고통받는 사람들, 그래서 약자라고 불리는 사람들 편에 서서 그들의 존엄성을 지켜 주려고 했을 따름이다.” 어찌보면 그때 그분이 지금보다 더 용기있는 행동이지 않습니까? 45년만에 다시 만난 이 사건에서 여러분은 무엇이 보이시는지요?
교회에서 사회교리는 민주주의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는 지 아십니까? 1891년 사회교리가 생겨난 후, 백년 뒤 요한 바오로 2세는 회칙 백주년 46항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교회는 민주주의를 높이 평가하는데, 이 체제는 확실히 시민들에게 정치적 결정에 참여할 중요한 권한을 부여하며, 피통치자들에게는 통치자들을 선택하거나 통제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평화적으로 대치할 가능성을 보장해 준다. 따라서 교회는 사적 이익이나 이념적 목적을 위하여 국가 체제를 점령하고, 폐쇄된 지배 집단을 형성하는 것을 도와주면 안 된다.” 국민은 폐쇄된 지배집단을 도와주면 안된답니다. 우린 예전 추운 겨울날, 촛불을 들며 목소리를 높였던 적 있습니다. 이는 ‘사적 이익을 위하여 국가 체제를 점령하고 폐쇄된 지배 집단을 형성하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하는 시민들의 의지를 드러낸 것이었습니다. 우리 사회의 쇄신이 올바르고 끊임없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마태오 복음 5장 6절의 말씀처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마태 5,6)은 함께 기도하고 연대하며 의로움이 깃든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해 노력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인헌동 교우 여러분.
조용히 가만히 있는 건 점잖은 것이 아닙니다. 상황이 다 끝난 후 목소리를 내는 것도 용기있는 자세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 국민들은 너무 힘든 지경에 놓여있습니다. 그런 때에 왕다운 왕이신 주님의 가르침이 세상에 더 펼쳐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목소리를 내십시오. 그 뒤엔 하느님이 계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