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1주일. 다해

2024. 11. 30. 오전 9: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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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1주일. 다

 또 한 번의 새로운 출발이 시작되었습니다. 올해는 1224일부터 1년간 기쁨의 해, 해방의 희년이 시작됩니다. 희년이 뭔가요? 살다보면 얽힌 것이 많습니다. 빚을 졌을 때, 이자가 원금보다 불어나 감히 갚을 수도 없고요. 점점 상승하는 고물가 상황에 집값 또한 올라서 그 집을 나올 수 밖에 없고요.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남의 집 일을 해주지만 거기서 빠져 나올 수 없는 일은, 이미 예전부터 있어왔던, 전혀 새롭지 않은 족쇄는 늘상 있었습니다. 누구도 탕감해주지 않던 것을 레위기에 따르면, 희년은 오십 년째 되는 해마다 지냈고요. 일곱 해가, 일곱 번 지난 마흔아홉 년째 해를 살고서, 오십 년째 되는 해를 덤으로 주어진한 해라 여겼습니다. 그러다 1470년 바오로 2세 교황님에 의해 25년마다 희년으로 선포합니다. 그럼 덤으로 주어진 희년에는 뭘 할까요? 평소 내가 지금 사용하는 것은, 다 하느님께서 허락해 주셨기에 가능하다는 사실을 안다면 뭔가 혁신이 필요하겠지요. 안식년이 하느님께 바쳐진 해인 것처럼, 주일이 창조주 하느님이 쉬면서 거룩한 날을 보내게끔 말씀하신 것처럼, 희년은 하느님께 바쳐진 거룩한 해이기에 뜻을 받들어 부채를 탕감해주거나, 노예를 풀어주거나, 경작지를 쉬게 하며 창조주인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졌습니다. 숨을 돌리고, 여유를 주면서 자유를 주고, 해방을 선포하였습니다. 하지만 요즘 세상이 그러합니까? 족쇄의 노예생활은 절대 풀어주려 하지 않기에 계속되는 억압은 우리를 지치게 하고 진이 빠지게 되는데요.

 이미 지금부터 25년 전인 2천년 대희년 때, 2천년간 여러 가지 역사적인 사건들 중, 세계인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반향을 불러일으킨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용서 청원이었습니다. 교황은 사순 제1주일인 2000312일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참회미사를 집전합니다. 하느님과 인류 앞에 과거 2000년간 역사 안에서 교회의 구성원들이 저지른 여러 가지 과오들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합니다. 종교개혁으로 교회가 분열되고, 종교재판을 하고, 십자군 원정을 보내며, 유대인과 타종교인들에 대해 박해를 하였고, 여성에 대한 억압과 원주민들에 대한 폭력,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를 파문하고, 2차 대전 중 나치에 대한 묵인 등, 구체적인 사항들에 대해 용서를 청했습니다. 이는 가톨릭교회 2000년 역사상 처음 행해진 일로, 새 천년을 여는 가장 획기적이고도 겸허한 자세로 평가되었는데요. 여기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희년을 선포하면서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라고 말씀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희망을 품지만, 현실의 풍랑이 너무 세차기에 그만 겁을 집어먹습니다. 그러면서 희망은 마치 언감생심(焉敢生心)이라는 말처럼 감히 바랄 수도, 마음에 품을 수도 없다며 희망의 불을 피워내지 못합니다. 신뢰가 아닌 우려로, 평온이 아닌 불안으로, 확신이 아닌 주저와 의심으로 말이죠. 여기에 하느님은 우리가 희망해야 할 이유를 찾도록 도와줍니다. 로마서 5장에 나옵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 믿음 덕분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서 있는 이 은총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를 했던 바오로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 희망이 삶의 전환점이 되어줄 것이라는 것을요. 물론 현실적으로 맞닥뜨려야 할 장벽과 한계는 분명 있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야 하는 두려움이 동반되었지만 당시 세상을 관장한 최고의 나라인 로마에 가서 주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품고서 그는 나아갑니다. 자신감 있게요.

 사랑하는 인헌동 본당 교우 여러분

좋은 믿음을 가진 사람은, 좋은 희망을 품고 있기에 자신을 속이지도 않고 실망시키지도 않습니다. 성경에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 라는 말씀처럼 나를 돌봐주시는 주님을 참되게 믿기에 두려워 떨지만은 않는데요. 새로운 계기가 되어주는 한 해가 밝았습니다. 그동안 얽힌 것을 푸는 기쁨의 한 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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