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3주일 미사. 자선주일
지난 시간은 분노와 좌절, 허탈함 그리고 분쟁과 무관심과 흥분의 나날이었습니다. 서로가 모여 군집을 이루며 목소리를 내고, 한편에서는 그것이 아니라며 부정하며 손사래를 칩니다. 무엇이 옳다, 그르다를 따지기 앞서 드는 생각은 ‘과연 서로에게 관심이 있는가?’ 하는 질문이 듭니다. 자신들의 목소리만을 드높이는 현장에서, 과연 자기가 제대로 보거나 들을 수 있는 지 묻게 됩니다. 사람이 흥분하거나 분노를 하면 통제력을 잃습니다. 그러면서 혈압이 오르거나 호흡수가 증가되면서 심장과 폐 등에 부담이 옵니다. 그러면서 발생되는 감정상황은 상황이 해소되지 않으면 나를 압박하기에 이릅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릴렉스죠. 이른바 ‘환기’ 가 필요합니다. 그 환기는 지금 집중된 것에서 벗어나게 해주고요. 당장 해소되지 않은 불편한 것에서 제대로 볼 수 있게 해줍니다.
우리가 고해성사를 보는 이유도 그런 겁니다. 나를 보는 것, 나를 인정하는 것, 그러면서 나와 화해하기 위함입니다. 죄사함을 받고 보속을 이행하는 단순한 교리 지식보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이 만드신 나의 현재 상태를 짧게나마 바라보고 인정하는 좋은 도구입니다. 그러면서 내가 용서받을 때 느끼는 해소감은 사람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이처럼 사랑에는 개방성이 들어있습니다. 나와 풀리지 않은 감정을 느끼는 나, 나와 용서할 수 없을 만큼 힘든 너, 그리고 더 크게 나아가 나와 모든 것을 해방시키시는 하느님과의 친교속에서 성숙되지 못했던 나를 바라보고, 그런 나를 이끌어주시는 주님 안에서 편안함을 가지고 새 출발을 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내가 그어놓은 한계를 넘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동안 연결된 모든 관계가 다시 보입니다. 그저 나와 달랐기에 미워했던 것으로 끝맺음 맺던 내가, 더 이상 그것만이 최선의 방법이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자선주일을 맞이하며,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을 바라봅니다. 그들은 미움의 대상이 아니라 보살핌이 필요한 대상입니다. 그야말로 아픈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본인이 아프다는 것을 모른다는 데 있습니다. 요사이 우울증이나 피해의식에 젖은 이들이 많습니다. 자기 생각을 거세게 주창하기에 대화가 안 될 지경입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뭔지 아십니까? 어설픈 설득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킵니다. 그래서 설득이 아닌, 공감이 필요합니다. 애닯게 바라봐주는 시선이 필요합니다. 그는 아직 자기 세계에 갇혀있기 때문입니다. 대다수 사람들이 하는 방법 중, ‘네가 착각한 거다. 그럴 리 없다. 네가 잘못 아는거다’ 라고 말하는 순간, 부정 당했다는 느낌에 그는 더 분노를 터뜨릴 것입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지적이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자기가 무엇을 말하는 지 모르는 사람에겐 미움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미움이 발생하는 이유 중 하나는 '상대가 나처럼 생각할 것'이라는 기대값에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와 그는 다르지요. 그런 기대는 접고서 시작해야 합니다. 그들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 많이 힘들지? 우리 한 번 털어놓고 이야기 해보자’ 하면서 감정을 받아주고, 달래줘야 합니다. 이럴 때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여다봅니다. 다른 사람들은 슬슬 피해가는 방법을 썼지만, 이방인에 불과한 그는 그가 왜 그런 일을 당했는지 따지지 않습니다. 그저 돌봐줍니다. 여기서 참다운 이웃은 먼저 지적부터 하지 않는다는 것을 봅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이 만든 폐쇄적인 답에 가로 막히지만, 참된 것을 볼 줄 아는 사람들은 거기에 가로막히지 않고 사랑을 표출해 냅니다. 당장에는 급진적인 사고방식이 똑똑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기에 그는 결국 비겁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반면 갑작스런 환경에서도 피하지 않은 이는, 당장에는 손해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참다운 사랑이 뭔지를 알게 해줍니다. 여러분은 어떤 쪽에 더 가깝습니까?
사랑하는 인헌동 교우 여러분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시대를 살아갑니다. 그리고 우린 옆에 있는 사람들과 당장에는 함께 지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이들 중에 누구는 부족하고, 누구는 좀 형편이 낫고, 누구는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이런 다양한 이들을 어떻게 봐주고 있습니까? 주님은 부족한 이들을 부르십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더 나아지고 성장되길 바라십니다. 여러분도 성장되고 싶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당장의 흥분됨과 기분에 휩싸일 것이 아니라 나를 드높여주는 참다운 사랑을 주시는 하느님을 만나십시오. 그럴 때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닌, 그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 주면서 지금의 나 자신과 화해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 행복을 맛보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