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2024. 12. 28. 오전 10:5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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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주님이 허락하신 24년 한 해가 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애많이 쓰셨습니다. 하루하루를 벌어 먹어야 하는 것이 아담과 하와 이래 당연하게 주어진 노동의 삶이라지만 그래도 힘든 것은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집안에 있던 우리가, 가족을 위해 밖으로 나설 수 밖에 없었고요. 가족을 생각하며 일하던 우린, 밀려오는 스트레스와 피곤에 시달리며 정작 제일 중요한 가족들에게 짜증과 피곤함을 풀어내며 서로를 아프게 만들곤 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가족을 위해 일했던 우리가, 오히려 가족을 힘들게 했고요. 위기로 몰아갔던 현실을 보며 무엇이 떠오르시는지요? 이런 올가미의 사슬에서 헤어나와야 하는데요. 여기에 무엇이 필요할까요? 이런 때 대다수 사람들은 단순한 해결책이나 방책만을 찾으려 듭니다. 당장의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신앙인은 다른 사고방식이 필요합니다. 이른바 뿌리를 돌봐야 합니다. 뿌리를 돌본다는 말은 이런 뜻입니다. 식물의 잎이 늘어진다고 잎만 돌보거나, 꽃잎 색깔이 변했다고 꽃만 보지 않습니다. 그것을 병들게 만든 흙 밑에 있는 안보이는 뿌리를 살펴야 합니다. 그런데도 겉으로 드러난 것만 살피면 오판을 하지요. 하지만 뿌리가 건강해지면 나머지도 괜찮아질 것입니다.

 여기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모든 형제들 275에서 진단을 내립니다. 우리는 다음의 내용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현대 세계의 위기의 가장 중요한 원인 가운데는 둔감해진 양심에 있고, 종교적 가치들을 멀리하는 것에 있으며 인간의 인격을 신격화하고 또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가치들을 최고의 초월적 원리들의 자리에 갖다놓는 유물론적 철학을 동반하여 유행하는 개인주의에 있습니다.’ 앞서 저는 가족이 가족에게 피해를 주는 현실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런 이유를 교황님은 직시합니다. 둔감해진 양심, 멀어진 종교적 가치관, 인간 인격의 신격화, 물질을 최고의 자리에 놓는 행동입니다. 이미 주위에서 벌어집니다. 원인이 이러하니 내 말을 듣지 않는 가족이 밉고요. 돈을 못 벌어오는 가족이 무능력해 보이고요. 이런 내 모습에 문제점을 찾기보다, 물질만을 최고로 여긴 나의 상황을 보지 않았기에 애꿎은 가족만 들볶았습니다.

 오늘은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입니다. 그냥 가족이 신자라고 성가정은 아니지요. 그 가족이 지금 무엇을 하는 지가 중요합니다. 1독서에서는 부모님에 대한 공경을 말합니다. 여기에 경제적 무능력 따위는 들어있지 않습니다. 생명을 주신 분, 어린 나를 이만큼 길러주신 그분이, 이제 연세가 들고 노쇠해지신 현실에서 자녀로서 무엇을 할 것이냐?를 말씀합니다. 복음의 예수님은 마치 부모님의 말을 어기는 것처럼 보이나, 사춘기 시절 겪을 수 있는 자신의 소신과 부모님의 걱정 사이에서 고집을 부리기보다 먼저 부모님을 뜻을 위해 접을 줄도 아는 겸허함의 미덕을 보여줍니다. 2독서는 그렇게 부모의 사랑과 자신을 살필 줄 아는 이들은 서로를 용서하십시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주는 끈입니다 라는 말씀을 통해 유기적인 가족의 사랑이 뭔지를 알려주십니다.

 사랑하는 인헌동 본당 교우 여러분.

믿지 않은 이들과 부대끼며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내가 하는 것이 뒤처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신앙인들의 행동이 왠지 구려보인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의 방식과 가르침의 장점에는 유행을 타지 않는다는 점이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 메시지는 시대와 세대를 관통하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세대차이가 없었겠습니까? 새로움과 옛것의 갈등이 없었겠습니까? 옆에 사람이 죽어나가는데도 게임을 계속하자고 외치는 오징어 게임 같은 일이 안 벌어졌겠습니까? 그동안 수없이 있어왔습니다. 긴 역사 동안 보아온 일입니다. 여기에 오랜 기간 관찰한 교회는 목소리를 냅니다. ‘진정 가족을 위한다면 가족과 함께 해야 한다고요. 결손 가정이 늘어나는 세태지만 그럼에도 남아있는 가족끼리 사랑으로 잘 뭉치는 것이 필요합니다. 상대를 탓하기보다 부족한 서로를 껴안아주면서 말이지요. 먼저 우리의 부족함을 인정하면서 옆에 가족들이 보여주는 부족함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봐 준다면 우린 지금보다는 나아질 수 있을 것입니다. 올 한 해 못했던 사랑을 남아있는 며칠과, 주어진 앞으로의 날에서 잘 실천해 나가시길 빕니다. 주님의 사랑을 헤아리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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