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0일

2024. 12. 20. 오전 5:3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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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도하는 사상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여러 다른 종교에서도 환시를 보기도 하고요. 나름 계시를 받고 체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곳과 우리 그리스도교 사상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누가 무엇을 말하고, 시킨다고 곧이곧대로만 하는 우리들이 아닙니다. 의심도 하고요. 뒤에서 욕도 하고 험담도 하는 우리가 그렇게 고분고분하게만 받아들이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절대자에 대한 사랑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 그들은 순한 양처럼 듣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믿고 의지하기에 내 생각보다 더 나은 것을 안겨주시리라는 신뢰가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그분을 알고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그분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전 교부들은 이렇게 알아들으려 했습니다.그분이 누구인지 앎으로써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누가 아닌 지를 알게 되면서 이해하게 되었다 고요. 성모님은 망설였습니다.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요. 이해가 안되지요. 이때 천사는 엘리사벳의 예를 들어줍니다. 그 늙은 나이에도 잉태한 엄청난 현실이 가능함을 알려주자, 성모님도 받아들이십니다. 아직 여전히 다 모르겠지만 나쁜 것을 걷어내면서 진정한 선한 영역에 다다를 수 있음에 찬동하고 동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는 말씀이 이해되는 지점입니다.

 그분의 크심을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그저 속좁게 나의 신앙을 근근히 연명시키는데 마치지 말고, 더 큰 차원으로 내던져야 하겠습니다. 나를 통해 무엇을 주실지 고대하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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