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공현 전 금요일

2025. 1. 2. 오후 10: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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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공현 전 금요일

 요새 대학교육이 많이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이른바 학생들은 영상세대라서 동영상 편집 등을 잘하지만 막상 교수님들은 그들보다 기술적인 면이 떨어집니다. 그런데 가르쳐야 합니다. 헌데 그들보다 모르면서 수강료는 꼬박꼬박 받으며 가르친다?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버클리 음대에서 실용음악을 공부했던 사람이 들려줍니다. 유학 가면 한국보다 더 대단한 것을 가르치냐?’ 했더니 아니랍니다. 강의는 한국하고 비슷하답니다. 그런데 왜 거기까지 갔느냐?’ 했더니 거기가면 아이들이 장난이 아닐 정도로 열심히 해서 그들을 보며 뭔가 같이 하면서 대단한 공부가 된다 고 대답합니다. 즉 그냥 주어진 것만 하는 곳이 아니라 서로 추구하는 문화가 되기에 다들 열심하면서 시도하는 것이 큰 공부가 되었다는데요. 우리나라 교육을 담당하는 교수님들도 내가 모르는데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모르겠다고 두려워하는 현실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시작했답니다. 나는 이 프로그램을 잘 모르니 너희가 직접 해봐라 했더니 학생들이 각자만의 방식으로 창의적인 발표자료를 내더랍니다. 그걸 보며 지금 시대의 교수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학생 스스로 탐구하고 성장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조력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어쩌면 주님을 아는 것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우린 솔직히 말해서 그리스도를 정확히 다 알지 못합니다. 신부님도 주교님도 교황님도요. 성경의 인물도 그랬습니다. 한계가 있었고요. 자기의 틀에 주님을 가둬놓기도 했습니다. 우리와 비슷한 면도 있었지요. 하지만 그것이 실망스런 일일까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반면 전부 확실히는 모르지만 한편 크게 생각할 줄도 알았습니다. 그것은 자기를 열어놓는 자세였습니다. 참된 진리는 다 알진 못하지만 그럼에도 그분께서 나를 인도해주실 것이라는 믿음에서 비롯되는 자세 말입니다.

 오늘 독서에서는 죄는 불법입니다 라며 악한 것을 선택하는 것을 금하고 말립니다. 선함을 택해야 하기에 기본적인 자세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신학이 발전하면서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악을 만나며 주님과의 관계성을 통해 다시금 주님을 찾게끔 만드는 계기도 되었으니까요. 죄는 나쁘지만 한편으로 은총이란 것도 나중에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서 아까 학생들처럼 하느님을 더 찾아가는 자기가 열린 개방성을 가진 계기도 되었습니다. 세례자 요한도 주님께 세례를 드린 후, 시각이 또 달라졌던 것처럼 말이죠. 그렇기에 지금 모른다는 말이 끝은 아닙니다. 이것을 계기로 시야가 열릴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열리는 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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