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6주간 월요일
우린 나보다 뭔가 잘하고, 남에게 칭찬받는 이들을 항상 좋아하지만은 않습니다. 이건 좀 불편한 진실이지요. 그게 시샘이 됐건, 질투이건 그를 한편에서 폄하하는 세력이 있거나 뒷담화의 문화가 존재합니다. 마치 복음에 나온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그렇게 대하듯이, 독서의 아벨을 쳐죽인 카인의 분노를 보면서 이런 감정이 꽤나 오래된 것임을 헤아릴 수 있는데요.
성경을 읽으며 하느님에 대해 의아해할 수 있습니다. ‘왜 하느님은 아벨의 제물은 즐겨 받으시고, 카인에게는 홀대하셨을까?’입니다. 아예 대놓고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하느님이 카인에게 말씀합니다. “네가 옳게 행동하면 얼굴을 들 수 있지 않느냐?” 뭘 그리 잘못했다는 것일까요? 여기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아벨은 양 떼 가운데 맏배들과 굳기름을 바쳤다” 굳기름은 내장과 내장 사이의 낀 기름기인데요. 이걸 태우면서 연기를 바치는 건데요. 상온에 두면 굳습니다. 그래서 이런 이름이 붙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맏배를 바쳤다는 것’입니다. 양을 쳤으니 거기서 처음 새끼를 바쳤답니다. 자녀를 낳아본 분은 알지만 ‘첫 아이’의 소중함과 애틋함은 다른 아이들과는 좀 다르게 취급합니다. 헌데 카인은 “땅의 소출을 주님께 바치고” 라고 건조하게 쓰였습니다. 수확물 중에서 일부를 가져다 내놓은 겁니다. 즉 봉헌의 정성이 달랐다는 것입니다. 이런 식이라면 미사 봉헌 때, 지갑에서 그냥 지폐 몇 장 꺼내는 방식은 상당히 어림없는 행동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예전 어르신 중에는 미사참례 전에 새돈으로 바꿔서 봉투에 넣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이건 마음의 표현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것을 준비하면서 자세도 달라집니다. 화답송에도 “하느님께 찬양 제물을 바쳐라” 고 정성의 소중함이 얼마나 큰 감동을 불러 일으키는 지 알 필요가 있는데요.
그러니 나보다 뭔가 잘하고, 칭찬받는 이들은 그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걸 모르면 시샘과 질투로 이어질 뿐이지요. 여러분이 하느님과 여러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