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6주간 수요일
용서, 화해는 어떤 순서로 이어질까요? 사람은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니기에 자기 맘대로, 자기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습니다. 계획을 세웠다해도 꼭 그걸 지키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게다가 남에게 하는 말도 생각없이 내뱉을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가끔씩 후회하는 모습을 보곤 합니다. 대단치 않은 존재들이 대단한 줄 알고 일을 벌이다가 안되면 좌절하고, 마음을 닫아걸고, 남에게 원망하는 일이 벌어지곤 합니다. 나도 못하면서 남을 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착각속에서 기대감을 갖고 말이지요. 그래서 철학자 쇼펜하우어도 사람이 35살이 넘으면 자기 성격을 고치기 힘들다고 말했는데요. 하지만 다행히도 그게 끝은 아닙니다.
오늘 말씀은 노아를 통해 다시 시작하는 하느님, 눈이 먼 사람을 고치며 새로움의 회복을 보여주십니다. 이 두 말씀의 공통점이 보입니다. ‘단계’가 있다는 점입니다. 노아는 처음에 까마귀를 보냈다가 이어 비둘기를 보내며 땅이 마른 것을 알아차립니다. 예수님도 고치시며 눈먼 이가 “걸어 다니는 나무처럼 보입니다.” 라며 형상만 보다가 점차 회복됨을 보여줍니다.
사람 마음이 스위치 같지 않습니다. 바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해야하는 것이 있다면 시간이 흐르며 가만히 있지만은 않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우린 회복하고, 치유하기 위해 여기에 왔기 때문입니다. 좀 시간이 걸리더라도 대충 문대면서 ‘어떻게 되겠지~’ 가 아니라 하느님의 치유 능력, 회복 능력을 믿으며 우리도 부단한 뭔가를 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