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6주간 목요일
우린 뭔가를 알게 되었을 때 기쁨을 느낍니다. 당장 그것으로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생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요리를 하더라도 레시피가 그거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지요. 다른 방법, 또는 다른 재료를 통해서 그 맛을 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대가(大家)들은 초보자에게 말은 안하지만 이런 말을 내뱉고 싶을 지도 모릅니다. ‘그게 전부가 아냐..’ 라고요. ‘더 나은 방법도 있어’
오늘 예수님은 물으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한 사람을 알아가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집안과 성장배경, 학력, 성격, 취향, 일처리 방식까지.. 한 사람을 제대로 알려면 실로 많은 요소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상대방은 이것을 다 모릅니다. 보여지는 것, 느껴지는 것, 그동안의 말투와 행동으로 지레 짐작하곤 합니다. 100개를 갖고 있다면 표현되는 것은 그나마 10개도 안될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표현능력이 많지 않은 사람이라면 더 모르겠지요.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을 뽑을 때 안타깝게도 우린 그에 대해 잘 모르고 임한다는 것을 만납니다. 매체에 비쳐진 모습, 그의 언론플레이, 보좌진이 만든 이미지, 동원된 사람들에 의해 올라간 지지율 등애 움직입니다. 게다가 나는 그를 만난 적도 이야기 나눈 적도 없습니다. 과연 나는 그를 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여기에 당신은 일부러 물어보십니다. 그러나 대다수가 자기 눈에 비쳐진 느낌이 전부인 양 여기는 것을 봅니다. 그야말로 ‘믿고 싶은 데로 믿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영성이 필요한 이유는 그런 정치가들에게, 만들어진 것에 속아봤기 때문입니다. 그럴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러니 기도의 정신으로 만물을 봐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그나마 제대로 된 시야를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