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5주간 목요일
같이 더불어 살아야 하는 우리들이지만 실제로는 손쉬운 결정을 내리려 할 때가 많습니다.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는 시도는 하지 않고 빠른 선택으로 ‘다음.next’를 외치지요. 하지만 탁상공론(卓上空論)이란 말이 왜 나왔겠습니까? 책상에 앉아 머리굴리며 끄적대면서 나온 결론이 실상과는 너무 거리가 있기에 나온 말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방식으로 일을 하면 다음이 아닌, 지금,now와 순간,moment를 놓치고 흘려보내는 실수를 하는데요.
하느님은 사람이 가여이 여기며 말씀합니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주겠다” 그러면서 온갖 짐승을 선사하시고 다른 이성을 결합의 기쁨을 제공해주십니다. 물론 모든 것이 좋게만 이어지진 않습니다. 복음처럼 아픈 아이와 함께 사는 이방인 여인의 이야기도 나오니까요. 안타깝게도 모든 조건과 환경이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흐르지 않습니다. 아프고 어려운 이를 돌보고 함께 살며 우리가 가지고 있던 오만함과 결핍도 보게하는데요.
여기에 우리에게는 생소한 스웨덴 사람인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를 소개합니다. 1961년생인 이 사람은 26세 때 다국적 기업의 임원이 되면서 성공가도를 달립니다. 그러다 문득 삶의 본질적인 문제에 의문이 들면서 걱정과 불안을 하게 되고요. 회사를 그만두고 태국에서 승려가 됩니다. 거기서 그의 스승이 이렇게 가르쳤답니다. ‘삶의 위기나 어디로 가야할지 모를 때 첫째,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를 생각하라. 둘째,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를 생각하라. 셋째.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를 생각하라..’를 외치라고요. 자기 생각이 옳다고 외치는 세상에서 그는 자신이 틀릴 가능성이 있음을 말합니다. 그 후 17년간 수행을 그만두고 환속하지만 그 체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 23개국에 번역됩니다. 그러면서 ‘떠오르는 생각을 다 믿지말라’ 며 진정 중요하고 필요한 것을 하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하느님은 우리가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이웃을 선사해주십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본인의 생각을 꺾으며 이방인 여인의 요청을 들어주십니다. 구세주는 이스라엘만의 주님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가끔 ‘내가 틀려서 부족함을 알게 되었다는 기쁨의 고백’을 하는 이들을 만나곤 합니다. 진정한 승리자는 자신을 꺾을 줄 아는 이들이지요. 마치 십자가에 매달린 주님처럼 말입니다. 우리도 참되게 질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