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7주간 월요일
지혜와 믿음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그동안 우린 지식을 얻는데만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그것으로 정보를 얻고요. 성적을 올리고, 아는 체도 했습니다. 허나 그것을 주는 진정한 자양분은 지혜였습니다.
본당에서 6개월 가량을 집회서 읽어오다가 오늘 독서에서 또 다시 만납니다. 무엇이 보입니까? 다루지 않은 분야가 없을 정도로 여러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이것을 지은 벤 시라는 유대교의 종교적 유산을 통해 당시 풍성한 그리스 문화를 부러워 할 필요가 없음을 역설코자 행동 지침서를 써내려갑니다. 여기엔 ‘주님을 경외하는 자세’ 가 들어었습니다. 율법을 연구하다보면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지혜라는 것입니다. 이제 그런 하느님을 알게 되었다면 역사속으로 들어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파악할 때 그분의 손길이 이어짐을 복음은 말하고 있습니다.
아픈 부모에게 말하지요.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마귀를 쫓아내지 못한 제자들에게는 “기도가 아니면 나가게 할 수 없다.” 하느님의 업적을 떠올려보면 ‘나는 참 작은 먼지같은 존재’ 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분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는, 공감하는 동질감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며 그분의 생각을 읽게 됩니다. 그리고 그 생각 안에 들어갈 때, 나는 그분과 하나가 됩니다. 마치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처럼 나와 남을 구분하지 않고, 내가 그가 되고 그가 나인 듯 여기는 관상의 경지까지 이르면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희열이 가능하게 됩니다. 많은 영성가들이 기쁨의 경지를 얻고자 기도의 시간을 늘여갔습니다. 그 기도의 시간은 사람을 견고하게 만들어주고요. 무너지지 않는 지탱이 되어줍니다. 안 믿는 이들은 우리에게 믿음과 기도를 그만두어야 할 나름의 이유를 말하고 있다면, 그러면 우린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논리를 반박할 만한 충분한 근거를 하느님의 지혜를 통해 받아 우리의 삶을 더 드높여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그분을 믿는 이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