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8주간 화요일

2025. 3. 4. 오후 9: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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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8주간 화요일

 물질적으로 가난하고 배고팠던 시절, 그때는 빈곤했지만 가슴 한켠엔 희망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볼 줄 알았고요. 내 영혼을 지키려 했으며 양심에 거리끼는 일이 생기면 그만두거나, 비슷하게 흔들리는 이들을 회유하며 다그칠 줄도 알았습니다. 이제 그런 시절이 지나 좀 풍요로움을 느끼는 때에 그때의 빈곤이 생각나지 않는 이유가 배가 불러서일까요? 아니면 끝없는 남과의 비교 때문일까요? 내 삶은 여전히 불만스럽고, 사회와 환경을 탓하며 상대방은 여전히 밉습니다. 무엇이 하느님을 잊어버리게 만들었을까요? 나 자신을 들여다보지 않고, 그 안에 있던 보물을 보지 않고, ‘다른 것을 높이 평가하며 그것들이 내 마음에 사로잡혀 있으며, 불나방처럼 타버릴 줄도 모르고 불길에 뛰어드는데요. 이것이 오늘날의 우상숭배이지요. 그 예전 바오로 사도의 제자들부터 그리스 철학을 연구하던 플로타누스 등의 신비 영성가로부터 기원은 출발합니다. 위에서 내려오는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인 긍정신학과 나로부터 그분께 올라가는 부정신학에서 당신께 올라갈수록 당장은 깜깜하게 여겨져 보이지 않지만 그로인해 군더더기를 벗어나면서 깨닫게 됩니다.

 제자들이 말했잖습니까?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집회서도 율법을 지키는 것이 제물을 바치는 것이고, 자선을 베푸는 것이 찬미의 제사를 바치는 것 이라고요. 올바른 길은 없는 가운데에서도 할 수 있지만 우린 그 마음마저 희미해지는 것을 보곤 합니다. 지금 가진 것마저 놓으면 다 없어지고 사라질까봐 말이죠. 예전 읽은 이야기 하나를 나누며 강론을 마치겠습니다.

안개가 잔뜩 낀 산을 등산하던 이가 길을 헤매다가 발을 헛딛습니다. 여기에 로프줄에 매달려 있는데 갑자기 마음 속에서 소리가 들려옵니다. “네가 줄을 쥔 그 손을 풀라고요. 하지만 말도 안된다고 여기며 더 칭칭 감습니다. 그러다 결국 거기서 죽고마는데요. 시간이 흘러 구조하러 온 이들이 현장을 봅니다. 그가 있던 곳과 땅의 지면과는 1m도 되지 않았음을요. 그는 손을 떼면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무엇이 우리를 움켜쥐게 만들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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