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1주간 월요일

2025. 3. 10. 오전 8:5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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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1주간 월요일

 동네에 은퇴 신부님이 살고 계셨습니다. 본당 신부님과 보좌인 나, 그리고 수녀님들이 대동하여 1년에 2. 부활과 성탄 가까이 인사를 드렸었지요. 대화가 오가던 중 취미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당시 주임신부님은 볼링을 하고 계셨고 그런 이야기가 나오던 중, 할아버지 신부님도 취미가 있었답니다. ‘~ 나도 소싯적 다양하게 했었지..’ 그런데 그 뒤에 이어지는 말이 지금도 나를 때렸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어...’ 이게 무슨 말씀일까요? 이것저것 건드리며 재미삼아 했을 뿐, 하나에 안주(安住)하지 못했던 반성이 들어계셨습니다. 그 자리에 돌아온 후, 나와 동기들 몇몇이 떠올랐습니다. 흥미꺼리로 풀고 있었던 것이지, 정말 연마하는 수준에까지 오르려 하진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싫증나면 다른 것으로 계속 바꿔 탔습니다. 노는 것조차 이렇게 대한다면 하물며 거룩함을 구하는 수준은 어떤 자세가 필요할까요?

 “나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라 하시는데 거룩함은 어떻게 나오는 것일까요? 뒤이어 계속 설명됩니다. 뭘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하고 쭉 나옵니다. 그걸 지켜야 한다면서요. 너무 당연하게 보이지만 그 당연한 것을 안하는 이들이 여전히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렇게 일관적이진 못합니다. 헌데 복음에는 오른쪽과 왼쪽에 있는 사람들, 이른바 심판의 날 이후 벌어질 상황을 미리 설명하십니다. 그러면서 오른쪽에 있는 이들을 칭찬하자 이렇게 대꾸합니다.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시거나, 목마르시거나, 병드신 것을 보고 찾아가 뵈었습니까?” 왼쪽에 앉은 이들도 똑같이 대꾸합니다. 둘 다 대답은 똑같았는데 뭐가 달랐을까요

 거룩함은 생각하고 나오는 게 아닙니다. 자연스럽게 흘러 넘치는 것입니다. 항상 그것만을 생각하면 당연하게 나오듯이요.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망설입니다. 할까? 말까?, 줄까? 말까?. 그러며 시간은 흘러가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도 기다리지 않기에 지나갑니다. 하물며 취미생활도 하다말다를 반복하면 잘할 수가 없는데, 거룩함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계속 붙들고 있으면서 바라보고, 넘어지고, 좌절하면서도 놓지 않을 때, 몸에 익으며 당연한 듯 흘러 나올 것이까요. 오늘도 그러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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