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2주일

2025. 3. 14. 오후 10:3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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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2주일

 전 고민이 많습니다. 하느님을 찾게 해드리려는 문제에 고민이 많습니다. 여기서 여러분이 이런 고민을 할 수 있지요? ‘나름 생각은 하는데, 하느님에 대해 잘 모르겠다란 문제입니다. 다행히 여기에 비슷한 답을 하나 찾았습니다. 예전 들어보신 철학자가 있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는 말을 한,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입니다. 이 사람이 대단한 이유는 내가 생각이란 것을 하는데, 아무리 부정하고 아니라고 하고 싶어도 내가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할 수 없다 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는 놀랍니다.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부정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요. 그는 자기 자신조차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음에 이르자, 그 유명한 말이 전 세계에 퍼져나가고요. 교과서에도 실립니다. 인간 생각이 인간 자체를 너머, 진리 자체까지 도달할 수 있다 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대단히 인간 중심적 사고방식입니다. 근대철학을 일으킨 이 주장은, 인간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으로 발전합니다. 이 말이 인기를 끌긴 했지만 한편 한계를 지닙니다. 1596년에 태어난 데카르트와 달리, 그 이전에 태어나서 하느님을 체험하고 철학을 잘 아는 그리스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데요. 데카르트가 말한 표현을 빌어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내가 생각하는 것이 존재한다.’ , ‘내가 생각하는 것은, 내 머리속에서 진행되는 그 어떤 것이다 무슨 뜻일까요? 데카르트는 하느님을 자기 수준으로 까내린 것입니다. 자기가 생각할 수 있는 수준에서만 사유할 수 있을 뿐입니다. 앞서 말씀드렸지요? 자기가 지금 생각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고 말하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것은 그저 자신의 머릿속에서 진행되는 어떤 것일 뿐인데, 그걸 진리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지요. 사람은 실수, 인식이 잘못되곤 합니다. 사람을 잘못 알아본다던지, 계좌이체 할 때 금액을 잘못 누른다던지, 잘못된 인식을 가진 일을 하면 망상이 벌어집니다. 헌데 그 얘기는 여기에 들어있지 않습니다.

 자~ 말이 좀 길었습니다. 인간적으로만 생각하는 이들은 신비적인 차원을 만나지 못합니다. 왜냐면 자기 생각이 옳다고 여기면서 갇혀버렸기 때문입니다. 왜 사람들이 21세기 과학의 시대를 살면서 무당이나 미신을 찾습니까? 이것이 옳고 아니고를 떠나서, 그만큼 인간이 한계를 느꼈기 때문 아닙니까? 자신보다 더 큰 차원을 만나면서 자기 생각의 짧음을 인정해야 진리에 눈을 뜨는데, 자기 생각에 갇혀 있으면 더 이상 진보는 없구요, 대화도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보통 사람은 그런 방법을 택하고 멈춥니다. 편하다고 여기지요. 이게 한계인 셈이죠. 사실 신부인 제가 여러분에게 한편으로 미안한 것은, 우리가 예비자 교리를 배울 때, 교리에 해당하는 교의 신학과, 기도에 해당하는 영성신학을 분리해 가르치는 현실을 산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분리하면 안됩니다. 당장엔 분리하면 이해하기 편할지 모르지만 그러면 하느님의 실제 의도를 파악하기 힘듭니다. 실제로는 분리하지 말고, 조화롭게 만들어야 하는데요.

 오늘 1독서에서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합니다. “하늘을 쳐다보아라, 저 별들을 세어보아라. 너의 후손이 저렇게 많아질 것이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현실은 아직 아들 하나 없는 입장입니다. 그런데 후손이 많아질 것이라니요? 뜻도 이해 안되면서 그럼에도 그는 하느님께 정성껏 제사를 바칩니다. 이게 기도하는 사람의 자세지요. 일단 모르지만 하면서 나중에 깨닫게 되니까요. 복음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일부러 거룩하게 변모하는 사건입니다. 그걸 본 제자들은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하며 당장에 좋아보이지만 뭔지는 잘 모르는 상황입니다. 현실을 탈피한, 고통을 배제한 것이 그저 좋아 보입니다. 환시에 취했지요. 여기에 뒤이어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그분의 명을 따라야 함을 말합니다. 2독서는 경고합니다. “그들의 끝은 멸망입니다. 그들은 자기의 배를 하느님으로, 자기네 수치를 영광으로 삼으며 이 세상 것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늘의 시민입니다.” 현실의 삶이 전부라 여긴 이들을 꼬집는 말입니다. 여기서 우린 무얼 바라봐야 할까요?

 사랑하는 인헌동 본당 교우 여러분.

우리는 현실과 영원함을 균형감 있게 살아야 합니다. 당장 손에 아무 것도 쥔 것이 없었지만 믿음으로 인해 성경의 인물들은 많은 보화를 얻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우리의 생각만으로 갇히면 안되는데요. 이런 걸 말한 김광규 시인의 시 생각과 사이를 읽으며 강론을 마치겠습니다.

 시인은 오로지 시만을 생각하고 / 정치가는 오로지 정치만을 생각하고 / 경제인은 오로지 경제만을 생각하고 / 근로자는 오로지 노동만을 생각하고 / 법관은 오로지 법만을 생각하고 / 군인은 오로지 전쟁만을 생각하고 /기사는 오로지 공장만을 생각하고 농민은 오로지 농사만을 생각하고 / 관리는 오로지 관청만을 생각하고 / 학자는 오로지 학문만을 생각한다면 / 이 세상이 낙원이 될 것 같지만 사실은

시와 정치의 사이 / 정치와 경제의 사이 / 경제와 노동의 사이 / 노동과 법의 사이 / 법과 전쟁의 사이 / 전쟁과 공장의 사이 / 공장과 농사의 사이 / 농사와 관청의 사이 / 관청과 학문의 사이를 생각하는 사람이 없으면 다만 휴지와 / 권력과 / 돈과 / 착취와 / 형무소와 / 폐허와 / 공해와 / 농약과 / 억압과/ 통계가 남을 뿐이다 ..

자리가 높아질수록 돌발질문을 많이 받게 됩니다. 지나치게 전문성에만 사로잡히면 포용력이 가로막히지요. 내가 가진 생각이 어떤 벽에 가로막혀선 안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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