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3주간 월요일
오늘 말씀에서 나아만 장군의 불평, 회당에 있던 유대인들의 분노가 가득 느껴집니다. ‘너희만 대단한 것 같으냐? 그런 건 우리도 있다’ 라고 내지르는 게 보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보입니다. 이른바 ‘기술의 격차’ 가 있음을요. 언뜻 가르침이 대단하지 않고 못마땅하게 여겨져서 무시하고픈 충동에 휘말립니다. 그런데 막상 겪고보니 뭔가가 있음을, 하느님이 계심을 확인합니다.
예전 로마가 힘있고, 정신적으로 그리스가 선진국이던 당시, 그들은 죽음 이후의 것을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철학이론도 말이지요. 그때 그리스도교는 부활을 통한 영원함을 설파합니다. 그로인해 답을 찾지 못했던 이들이 그리스도교에 입교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제 클래식 기타선생님은 평소 술을 많이 드시고 청결하지 못했습니다. 낮 3시에 일어나는 주야가 바뀌신 분이었으니까요. 같이 배우던 이도 ‘손톱에 때가 끼었다’ 며 흉을 보더니 결국 그만뒀습니다. 별 볼 일 없다고 여긴 것이지요. 하지만 그런 분이 교보문고에 기타교본을 입점시키며 진열대에 세웁니다. 그것도 만년필로 손으로 그린 악보를요. 2천년 초반에 다른 교본은 음반cd도 실려있고, mp3도 있지만, 아예 그런 것이 없는 굉장히 불친절한 악보였는데요, 많이 팔리진 않았지만 관심있는 이들은 다른 악보보다 세심하게 그려진 것을 알고 사갔다고 합니다.
그걸 보며 깨닫게 되었습니다. 결국 볼 줄 알고, 들을 줄 아는 이는 알아본다는 사실입니다. 단순히 자기 자존심만 내세우는 이들은 못본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사람에 대해서도 그런데, 하물며 하느님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아볼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