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2주간 금요일
사람들은 자기 예상대로 일이 진행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나름 계략을 꾸미기도 하고요. 누구 뒤에 줄을 서야 미래가 보장되는 지도 따져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하느님은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여기서 요셉과 복음에 나오는 상속자의 비유를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요.
먼저 오해할 부분부터 정리하지요. 창세기 37장 2절부터 “야곱의 역사는 이러하다” 고 나옵니다. 그런데 3절에 “이스라엘은 요셉을 늘그막에 얻었으므로” 라고 나오는데요. 이스라엘이란 이름은 창세기 32장에 하느님과 씨름하면서 얻은 이름이고요. 그 뒤에 역사가 이어집니다. 여기에 여러 아들이 나오는데요. 문제는 형제들이 요셉을 미워합니다. 2개의 큰 이유가 있는데 ① 긴 저고리와 ② 꿈해몽입니다. 먼저 긴 저고리를 입었다는 말은 소매가 긴 옷인데요. 이는 일하는 사람이 입을 수 없는 옷입니다. 거추장스럽지요. 이 옷은 족장이나 후계자나 입을 수 있는 옷인데요. 이걸 입었으니 형들이 화가 날 만하지요. 하지만 이는 단순히 귀염받는 막내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을 이끈 후계자로서의 미래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꿈해몽은 하나같이 형들이 막내에게 절하는 내용이라 분개하여 그만 상인들에게 팔아버립니다. 여기서 요셉을 사간 상인이 미디안 상인인지, 이스마엘인인지 혼동하여 나오는데요. 이는 이스라엘 사람 외에는 관심이 없기에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고요. 정작 중요한 것은 창세기 45장에 형제들과 다시 만날 때 요셉이 말하는 “형님들이 이집트로 팔아넘긴 그 아우입니다.” 란 말처럼 누구에게 팔았느냐? 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집트에 오게 되었지만 그로인해 형제들과 화해하고 치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복음에 나오는 “상속자” 가 소작인들에게 죽는 내용에서 팔린 요셉과 그리스도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원치 않은 이에게서 구원이, 미래가 이뤄지고 있으니까요.
요셉을 제거하면 아버지의 사랑을 얻을 수 있으리라 형제들은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가정의 평화는 붕괴됩니다. 예수님을 죽이면 끝나리라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의로운 이는 죽지 않습니다. 그 이름이 영원히 기억되고 있으니까요. 성경 저자는 말합니다. 주님은 늘 요셉과 함께 계셨고요. 그리스도 또한 하느님과 함께 계셨기에 두렵지 않으셨습니다. 괜히 누구랑 엮여 줄을 대는, 인간적인 어리석음에 매달리기보다 하느님께서 누구와 함께 하시는 지 봐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