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4주일 다해.
소설과 영화 속 백설공주에 나오는 왕비가 거울을 보며 외는 주문이 있습니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이쁘니?’ 이는 거울이 자신을 인정해줘야 안심하는 불쌍한 영혼의 모습을 살필 수 있습니다. 결국 그의 행복은 누군가 인정을 받아야만 하고요. 원하는 답변을 얻지 못했기에 분노와 열등감에 사로잡혀 백설공주를 죽이지요. 처음부터 그녀는 불쌍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비교를 통해 행복을 얻으려 했기 때문이지요. 어쩌면 우리도 이와 비슷한 주문을 외울 수 있겠습니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가장 가련하고 불쌍한 사람이니?’ 여러분은 누구라고 여기십니까? 이런 사람이 아닐까요? ‘자신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것만 보려는 사람, 참된 진실과 진리를 외면하는 사람, 결국 자신을 내어주신 본향인 하느님을 모르거나 외면하기에 돌아갈 곳이 없다고 여기는 사람’ 말이지요.
오늘 복음은 잃었던 아들의 비유가 나오는 중요한 말씀이지만 한편 2독서의 말씀으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라고요. 여기에 둘째 아들처럼 사랑을 깨닫고 돌아오는 이가 있는가 하면, 첫째 아들처럼 늘 같이 있어도 무감각하게 깨닫지 못하는 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어르신의 마음을 몰라보고 무시하는 이도 있지요. 어른들은 말씀을 많이 하지 않습니다. 다만 기다려주고, 돌아오면 품어줄 뿐이지요. 아버지가 사람을 풀어서 찾지 않은 이유는 그 아들이 깨닫게끔 기다려주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억지스러우면 탈이 나니까요. 그 기다림은 어르신 스스로에게는 인고(忍苦)의 시간이었을 것이고요. 방황하는 아들 스스로는 좌충우돌 부딪히는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이런 점을 알게 되지요. 돌아갈 곳이 있음에 기뻐할 수 있고요. 품어줄 누군가가 있음에 안정을 얻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참으로 혼란한 시기입니다. 이런 때에는 유다 같은 인물이 많이 생겨납니다. 나름 잘 살려고 그랬지요. 분명 그는 제자 사이에서 총무를 맡을 정도로 똑똑했습니다. 허나 그가 불쌍한 이유는 예수님을 배반해서가 아닙니다. 홀로 답을 찾다가 스스로를 몰아부쳤기 때문입니다. 그런 시도가 참다운 답을 만난 것이 아니라, 원하는 답만을 찾다가 스스로와 모두를 망쳐버렸다는 점이 불쌍한 것인데요. 그런 애씀의 시도를 요사이 동조하고 따라하는 이들이 늘어납니다. 돌아갈 곳이 있음을 잊어버리고서 지금 내가 있는 이곳에서 모든 답을 얻어야만 한다고 여깁니다. 마치 거울의 대답을 통해 자기 인생을 다 걸었던 백설공주 속 왕비처럼, 듣고싶은 대답에만 목메는 어리석음을 피해야 하겠습니다. 우린 결국 돌아갈 곳, 돌아갈 품이 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