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4주간 월요일

2025. 3. 31. 오후 10:4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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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4주간 월요일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가 이해할 수 있는 정도에서만 생각합니다. 어찌보면 당연합니다. 자기를 넘어선 부분을 어떻게 상상이나 하겠습니까? 자기를 넘어선 부분을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신비로움, 믿음을 이야기 하려면 존재의 근본에 대한 탐구가 이뤄져야 하는데요. 요사이 다시 뜨는 단어가 있습니다. ‘메타(meta)’라는 뜻으로 넘어서는이라는 단어입니다. A.I. 시대가 되면서 이제 누구 것을 따라만 하면 버틸 수 없지요. 창조적인 능력이 되야만 기계를 넘어설 수 있는 시대가 되어갑니다. 이제 사람이 인식할 수 있는 범위를 넘는 영적인 형이상학을 다시금 만날 수 밖에 없는데요. 인간의 이성을 넘는 영역, 물질을 넘는 영역을 만날 때, 믿느냐? 아니냐? 에 갈림길에 놓이면서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빚어집니다.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너희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왕실관리는 아이의 생명을 살리고자 애원합니다. 물론 제대로 된 믿음은 아니었으나 그의 간절함에 주님은 그의 청을 들어주십니다. 독서에는 나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리라 면서 묵시록의 새로움의 창조를 말씀합니다. 여기서 말하느는 창조란 여태껏 봤던 것과 다른 창조입니다. 우는 소리, 울부짖음이 없는 영원한 생명을 미리 예고하십니다. 물론 그걸 듣는 사람들은 못 알아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사람들은 그제서야 알아듣고 믿게 되지요. 이제 그분이 계신 시간이 훨씬 지난 시대를 살고 있는데요. 여기에 우리가 지금 그분을 못미더워하는 것은 그분의 잘못은 아닙니다. 물질적 사고방식에 갇혀 있는 우리의 현실 때문은 아닌가? 하는 이유를 찾게 됩니다

 믿음이란 그저 인간의 오감, 육감을 넘어서는 영역입니다. 감각기관에만 의존할 때 여기에 우린 갇힙니다. 감각은 사실 믿을만한 것이 못됩니다. 우리가 젊을 때는 잘 들리고, 잘 보였지만 노화가 되면서 잘 안들리고 안보이는 것을 경험하면서 알게 되지요. 감각은 그저 그걸 할 수 있는 기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요. 시간이 지나면 퇴화하는 것임을요. 하지만 그 너머를 기다리지 않습니까? 그럴 때 더 이상 듣고, 보이는 것에 메이지 않을텐데요. 이제부터는 하느님을 통해 희망을 기다릴 것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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