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5주간 화요일
운동 경기를 보면 어떤 종목은 빠른 속도를 요하는 종목이 있습니다만 어떤 것은 코스와 과정과 시간을 버텨야 하는 종목도 있습니다. 골프, 야구, 마라톤 등이지요. 얼른 빨리 해치우고 싶겠지만 해당된 과정을 거쳐내야만 비로소 승패를 가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원의 과정에는 어떤 것이 필요할까요?
오늘 독서에서 사람들은 소란을 피웁니다. 광야를 벗어나 자유의 땅으로 가는 길이 더디게 느껴졌습니다. 게다가 자신을 이끌어주신 하느님에 대한 믿음도 같이 퇴색되어 갑니다. 우리가 그렇지 않습니까? 평소 이런 이야기를 들었지요. ‘자녀를 믿어줘야 한다..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고요. 하지만 현실은 어떠합니까? 아이가 말이 더디면, 걷는 것이 늦어지면, 취직이나 결혼이 늦어지면 조급해하며 불안해합니다. 그러면서 아이에 대한 믿음이 사라져갑니다. 나의 불안함에 못 견뎌하며 다른 집과 비교하면서 무너져 갑니다. 기다림을 힘든것으로만 여기면서요. 이제 못 믿을 것 투성이인 세상을 살게 됩니다.
여기에 당신은 말씀하십니다. “매달린 구리뱀을 보라” 고요. “사람의 아들이 들어올려진 십자가를 보라” 고요. 믿음 어린 신뢰와 함께 필요한 과정을 거치며 그제서야 당신이 누구신지 알아보게 됩니다. 다만 문제는 내가 조급하고, 다급할 땐 그분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답답함에 눈이 가리워지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 과정을 벗어나거나, 해결이 되면 그제서야 그런 시간이 필요했음을 알아차립니다.
여기서 이런 것을 봅니다. ‘과연 나는 주님을 어디까지 믿고 있는가?’ 란 점입니다. 예전 답답함에서 해소되던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랬을 때 나를 되새겨 보며 나의 믿음의 정도를 살펴야 하겠습니다. 당신께서 그 시간마저 나에게 안배해 주셨음을 말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