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5주간 월요일
1년 중 가장 긴 독서인 수산나는 궁지에 몰립니다. 그녀를 탐낸 이는 백성의 원로이며 재판관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판사의 권위는 대단한데 그 당시는 하느님과 동급처럼 여겼을 것입니다. 여기에 권위에 대항하는 이가 나타났으니 아직 젊은이에 불과한 다니엘이었습니다. 권위보다 효율적인 변호를 통해 억울한 그녀가 풀려난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권위란 뭘까요?
쇼펜하우어라는 철학자가 있습니다. 그가 쓴 ‘토론의 기술’에서 토론을 이기는 방법 중 하나를 소개합니다. ‘상대로부터 존경받는 권위를 누릴 때, 논쟁에서 쉽게 이길 수 있다. 상대의 지식과 능력이 모자라면 모자랄수록 그만큼 가진 권위는 더 커지게 된다’... 권위, 권력은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할 수 있는 용인된 권리와 힘’이라고 표현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개인이나 소수에게 집중될수록 부패하기 쉽습니다. 강인한 힘과 자리를 가질수록 권력자는 윤리의식이 부재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물론 모두가 아니라고 할 지라도 오염되기는 쉬운 구조입니다. 인간에게 내재된 탐욕이 활개를 펼칠 좋은 바탕이 되기 때문입니다. 역사상 수 많은 독재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그들이 가진 힘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주님은 말씀합니다. “나 혼자가 아니라, 나와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함께 심판하시기 때문이다.” 여기서 묻게 됩니다. ‘나는 지금의 자리에서 무엇을 위해 일하고 있는가?’ 를요. 답이 자기 자신에게 귀결될 때 위험해질 것입니다. 본인의 욕구 충족이기 때문이지요. ‘모두’를 위해서 라고 답한다면 이것도 위험할 것입니다. 자칫 사탕발림의 속임수를 펼 수 있으니까요. 무거운 질문을 자세히 들여다볼 때, 나는 나의 실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대다수가 자신에게 속아왔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