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간 화요일
신자들은 ‘유다의 배신’에 대해 비방하곤 합니다. 하지만 불편하게도 유다의 모습에서 우리 의 상태를 비쳐볼 수 있는데요. 대다수 인간들이 이와 비슷한 행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게임이론이 있습니다. 게임은 혼자만 하는 게 아닙니다. 온라인 게임을 하는 요즘 팀을 이뤄서 여럿이 협력해야 합니다. 그 이론 중 팃포탯(Tit-For-Tat)이 있습니다. ① 여럿이 협력상태로 시작합니다.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관계입니다. ② 상대가 배반하면 자신도 배반을 합니다. 더 이상 이득을 취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죠. ③ 그러다가 다시 협력을 하면 원래 상태로 돌아갑니다. 이런 것이 나온 이유는 사람의 심성과 선택이 결국 어떤 가를 말해주고 있기에 경제학이나 정치심리학에도 많이 쓰는 이론입니다. 이와 비슷한 것이 80년대에 나온 ‘죄수의 딜레마’입니다. 두 죄수가 있습니다. 따로 불러서 자백할 기회를 줍니다. 둘 다 자백하지 않으면 징역 1년. 둘 다 자백하면 징역 5년. 둘 중 하나가 자백을 하고 다른 하나가 자백을 안하면 징역 10년을 받게 할 때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언뜻 생각하기에 둘 다 자백을 안하고 1년을 받거나, 둘 다 자백하고 5년을 받을 결정을 내릴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자기 이익을 얻기 위해 둘 중 하나는 어긋난 행동을 하여 10년 받는 것을 선택하게 된다는 보복성 결정을 내린다는데요. 이는 둘 다 사전에 입을 맞춰놓아도 상대가 안되게끔 하기 위해 그런 결정을 내린다는 이론과 실험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네가 하려는 일을 어서 하여라” 유다는 그렇게 배반합니다. 이미 예수님에 대해 실망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결정이 선생님을 망치고, 자신의 인생마저 안 좋은 선택을 하고 마는데요. 사람이 그렇게 이성적이지 않다는 이론과 실제는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종 둘째 노래처럼 “나는 쓸데없이 고생만 하였다. 허무하고 허무한 것에 내 힘을 써버렸다.” 탄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소득은 있습니다. ‘결국 인간이 어떤 존재’ 인지 알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지금도 신뢰보다는 배신과 배반이 판치는 시대에서 ‘나는 어떤 신뢰로 살고 있나?’를 스스로 묻게 됩니다. 우리의 판단이 더 나은 선택을 하길 소망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