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팔일 축제 내 수요일
사람은 자신의 경험치를 절대화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본 것, 들은 것, 배운 것 등은 나를 성장시켜 주는 중요한 가치이지만 한편 그 안에서 그것만 들여다 볼 때 갇혀 버릴 수 있는데요. 그래서 사람은 자꾸 새로운 것을 배우고 습득해야 고루해지지 않는데요. 특히 우리가 검색하는 스타일을 아는 알고리즘이 우리를 그 안으로 인도하는 세상인지라 특히 조심해야 하는데요. 여기에 신앙도 그런 면이 있습니다. 내가 알고, 믿고, 체험한 것만을 주장하다보면 부활하신 주님은 인간 예수 때와 다르기에 혼란을 갖게 됩니다.
오늘 말씀은 엠마오의 이야기입니다. 그동안 나오지 않던 동네에서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지만 알아보지 못합니다. 빵을 떼실 때에야 알아봅니다. 어제 마리아도 예수님을 동산지기로만 봅니다.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돌아가신지 며칠 됐다고 못 알아보다는 것을 말이지요. 여기서 이런 것을 유추할 수 있겠습니다. 부활 후의 주님은 그전과 다른 분임을요. 차원이 달라졌고요. 모든 것을 이기신, 불가능이 없는 분임을요. 엠마오에서 만난 그분을 거의 동시간에 다른 지역에서 시몬이 만났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살피게 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어야 하지만 부활하신 분을 그저 글자로 쓰여진 것으로만 알아듣기에는 힘들게 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이제는 기도하는 눈으로 바라봐야 하지요. 우리 주변에도 그런 것을 가끔 봅니다. 내가 알던 사람이 건강이 좋아졌는지, 기분이 좋아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얼굴부터 예전과 달라졌음을 보곤 하지요. 하물며 부활 후의 주님도 그전과 달라지셨겠지요. 그로인해 이들은 “마음이 타오르는” 체험을 했고요. 베드로는 사람을 일으키는 기적을 베풉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영향으로 달라진 것이지요.
우린 고루해지지 않으려 이른바 꼰대가 되지 않으려 이 삶을 삽니다. 자기 고집에만 고착되지 않으려고 말입니다. 주님으로 인해 더 나아지고 싶어서요. 그러려면 부활하신 주님에 대해 더 생각해봐야 하겠습니다. 그분의 힘, 그분의 마음을 떠올리며 멈춰져 있던 내 삶의 활기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