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2025. 5. 1. 오후 11: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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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좋은 품질의 제품에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하다는 것입니다. 한 손에 잡히고, 자기만의 뭔가가 뚜렷하고요. 기능도 복잡하지 않습니다. 쉽게 와닿고 직관적이니, 많은 사람들이 매력을 갖고 찾게 됩니다. 이게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이런 방식은 그저 물건에만 한정되어 있진 않습니다. 아타나시오 주교가 싸웠던 아리우스라는 이단이 그러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게 꼭 좋기만 한 것일까요?

 320년 경 사제였던 아리우스는 하느님은 유일하신 분이기에 예수는 참된 하느님이 아니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칭할 때 쓰는 아들이란 칭호 자체가 하느님과 같은 지위라고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해서 삼위일체를 부정합니다. 언뜻 그럴 듯하게 보입니다. 하느님 외에 예수님까지 흠숭하면 그건 유일신 사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의 구원이 열렸다고 말하지만 예수께서 하느님께 순종하여 구원의 길이 열렸다고 말하면서, 이에 예수님이 이라고 말하면 과연 순종이란 것이 무슨 의미가 되겠느냐? 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럴 듯하게 들리기에 교회는 긴 기간 동안 분열이 됩니다. 여기엔 쉽게는 들리지만 간과하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 하나는 하느님의 뜻이 내 머리로 다 이해되어야 한다는 점에 사로잡히게 되면 그렇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믿음, 신비의 측면을 다 사라지고, 그저 이해도만 남게 되는데요.

 오늘 독서가 그런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베드로의 신앙과 기적으로 인해 당시 유대인들은 혼란을 겪습니다. 그러면서 당시 선동을 주도했던 몇 명의 인물을 거론하다가 마지막에 이런 말을 꺼냅니다. 저들의 계획이나 활동이 사람에게서 나왔으면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에게서 나왔으면 여러분이 저들을 없애지 못할 것입니다. 자칫하면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2025년은 이런 이단을 정리한 니케아 공의회가 열린 지 1700년이 되는 해입니다. 여기 신경에 이런 문구가 나옵니다. 성부와 한 본체로서 성부,성자, 성령이 각각의 위()이지만 하느님으로 동일하다는 삼위일체 신앙고백입니다. 인성을 통해 신성에 동참하는 주님이라는 고백은 오늘날까지 전해집니다. 결국 누가 하느님을 대적했는지 흐르는 시간속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머리로 다 이해되지 않는다고 하여, 신비로운 영역을 까내리진 말아야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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