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5주간 화요일
젊을 때를 회상해보지요. 젊기에 아직 제대로 된 시작도 안한 상태입니다. 여기엔 좋고 나쁨이 없습니다. 오직 선택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명언 하나를 만나게 됩니다. ‘나는 하나의 길을 선택하면서 천 개의 다른 길에 등을 돌리게 된다’ 는 라는 사실입니다. 뭔가 선택을 하는 것은 좋지만, 나머지 것을 내려놓아야 하기에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없었던 교육이 하나 생겼습니다. 이제 막 서품받은 1년차, 2년차 새신부님들만 받는 교육입니다. 새신부님들이 서품받고 막 사목을 하니 기쁨과 의욕이 넘치지만, 실제로 만나는 교우들의 반응은 그다지 좋은 것만 있지 않습니다. 미사 참석율도 좋지 않고요. 열심히 준비한 강론을 하여도 반응은 좋지 않습니다. 게다가 뭔가 할라치면 ‘신부님 그런 것은 교우들이 별로 안 좋아합니다.’ 란 반대에 부딪힙니다. 예전에도 없었던 상황은 아니지만 요새는 그 표현이 더 적극적이고 노골적이죠. 이때 쉽게 실망과 좌절감을 맛보게 됩니다. 그걸 아시는 주교님은 새신부님들만을 불러 ‘하느님의 부르심과 여러분의 선택을 믿고 잘 가야 한다’ 고 말씀하시며 이런 당부를 합니다. ‘다가오는 어려움 때문에 모든 것을 내려놓는 어리석음은 갖지 말자’ 고요. 앞서 하나를 선택하면서 반대로 나머지에 대해 뒤돌아보지 않아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처럼 무엇 하나를 얻으려면 희생을 해야만 얻어지는 것이 생깁니다. 독서에도 돌을 맞은 바오로는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라며 다른 제자들을 독려하고요. 복음도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하며 말씀합니다. 주님의 말씀이 대중들이 듣기에는 당장에 불편하게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지요. 진리는 쉽게 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린 무엇이든 할 수 없는 자기의 한계를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내게 주어진 규율을 바라보고, 본분에 맞춰 살아갈 때, 나는 당당히 살 수 있습니다. 이미 희생하기로 마음먹은 것에 대해서는 괜한 미련을 버려야 하고요. 주님을 믿고 따르고자 하는 것에만 집중한다면 나는 나 자신을 돌볼 수 있습니다. 우린 나 자신의 소명을 지키며 살아갈 때, 그제서야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