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5주간 목요일
살면서 가끔 실수를 하곤 합니다. 그중 하나는 ‘배운 데로 한다’ 는 것입니다. 이것이 좋게 들릴 수 있지만 가끔 이게 문제가 되는데요. 이를테면 유학가서 공부하다가 학위를 따고 국내에 와서 가르칠 때, 학생들에게 외국에서 본인이 배운 데로만 강요한다던가 하는 문제입니다. 사실 모든 것의 시작은 생성된 배경과 환경, 풍습, 인식 등의 공감속에서 발전합니다. 그럴 때 현지화를 시키며 이것이 퍼져나가면서 많은 영향을 미치는데요.
자기가 배운 데로만 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처음 우리나라 천주교의 전파 배경도 그랬습니다. 우리나라의 제사를 귀신숭상처럼 오해했고요. 성당 건물이 서양식으로 지어진 것이 그 예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명동이나 중림동 성당을 보십시오. 고딕양식의 서양 건물이지요. 누구는 이것이 좋아 보이고 멋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당시 조선시대에 다들 도심지의 낮은 지형에서 혼자만 불쑥 솟아오른 건물이 한국의 산세(山勢)와는 맞지않는 시도였습니다. 물론 지금이야 문화재로 지정되었기에 평판이 좋아졌지만 그걸 지으신 분들은 본인이 배운 데로만 시도한건데요. 그래서 베드로도 소리칩니다. “왜 우리 조상들도, 우리도 다 감당할 수 없는 멍에를 형제들의 목에 씌워 하느님을 시험하는 것입니까?” 자기들도 못할 것을 남에게 부과하는 불합리함을 지적한 건데요. 조선이라는 외국에까지 와서 선교를 하다보니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자기 방식대로만 강요하는 문제이지요. 주님은 말합니다. “너희는 내 사람 안에 머물러라.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사실 사랑을 아는 이는 과도한 짐을 남에게 떠맡기지 않지요. 자신도 못하는 것을 무리한 강요를 벌이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뭔가를 하다보면 ‘이상적인 것을 좇거나 강요’하는 일이 벌이지긴 합니다. 잘해볼라고 그리된 것이지요.
사람은 배우기만 하면 안되고요. 가르쳐보기도 해야 합니다. 그럴 때 내가 얼 나 많이 아는 지도 또는 모르는 지도 알고요. 알고 있는 것을 뽑아내서 가르칠 때, 별 무리가 없이 자연스레 하는 지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의 이야기를 듣기만 해선 안됩니다. 들은 것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 를 확인해보려면 남에게 알려주기도 해야 참다운 앎이 가능한데요. 조심하며 잘 임해보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