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5주일
벌써 부활이 한 달이 지나 5주차를 맞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주님에 대해 오해하는 우리를 봅니다. 그 오해란 뭘까요? 지금 우리가 하는 미사를 예로 들지요. 왜 미사를 건조하게 느낄까요? 교회가 전하는 공의회 문헌 전례헌장 47항은 말합니다. ‘우리 구세주께서는 당신 몸과 피의 성찬의 희생제사를 제정하셨다. 이로써 십자가의 희생제사가 계속 이어지게끔 하며, 그 안에서 일치와 사랑을 나누고, 미래 영광의 보증을 받는 파스카의 잔치가 된다’ 나눠서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주님은 그냥 제사를 드리지 않았고요. ① 당신이 죽음으로 희생하셨다는 점. 그 희생으로 ② 모두가 하나가 되었다는 점, ③ 파스카, 건너가다는 뜻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고 여긴 사람들의 고정된 생각을 바꾸어 부활, 영원한 삶으로 건너가게 하셨다는 것이 들어 있습니다. 헌데 문제는 우리의 고정관념에 있습니다. 그 고정된 관념, 갇힌 생각이 뭘까요? 그것을 깨야만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는 ‘새로운 계명’을 이해할 수 있는데요.
긴 역사동안 열심했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열심하다’ 하면 좋은 말 같지만 실은 정석(定石)의 방법을 왜곡하고, 무시하기에 문제가 생깁니다. 이것을 교회에서는 ‘이단’ 으로 부릅니다. 열심하다보니 왜곡이 생기고요. 한쪽으로 휘는 편향성을 봅니다. 지금부터 4가지 문제점을 설명하면서 답을 찾고자 합니다. 1. 영지주의입니다. - 그노시스라고 불린 이 말은, 믿음보다는 지식, 정보를 우월시합니다. 기원전부터 생긴 이것은 지금까지도 사람들에게 퍼져있습니다. 왜 문제냐? 하면 매력적이기 때문입니다. ‘많이 안다’ 는 것은 모두가 바라는 것이잖습니까? 그런데 왜 문제겠습니까? 원래의 것을 따서 믹서하고 조합하면서 마치 자기네가 만든 것처럼 만들어 제시하니, 사람들이 혹하며 빠져듭니다. 오늘날 유통되는 대다수 정보는 다 자기네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영향을 주고받으며 이뤄졌습니다. 그러다보니 오리지날이 뭔지도 모르는 사태에 빠지고요. 심지어 예수님도 만들어진 인물로 여기기도 합니다. 2. 펠라지우스주의입니다. 410년까지 로마의 수도자였던 펠라지우스가 펴낸 이론입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섭리를 다 이해할 수 없기에 오직 노력만으로 얻어낼 수 있다’면서 은총의 불필요성을 말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금욕하고, 도덕적이었기에 사람들이 존경했습니다만, 결국 이단판정을 받습니다. 왜냐면 하느님이 들어오실 문을 열지 않고, 자기 생각과 고집에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의지가 강한 사람, 생각이 강한 사람은 일단 잘 삽니다. 자기 머리를 믿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결국 본인도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사람의 나약함과 한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왜 나처럼 못해?’ 합니다. 이러면 남을 돕지 못하는 꼴이 됩니다. 3. 지나친 개인주의입니다. 오늘날 만연된 우리의 모습입니다. ‘나는 내 것만 신경쓸꺼야’ 에서 비롯되는 문제를 보셨나요? 교회가 말하는 ‘같이 사는 공동체’ 라는 정신을 오염시키고 훼손합니다. 이 미사만 하더라도 많은 봉사자들의 보이지 않는 노고가 있습니다. 이들이 왜 이러고 있을까요? 본인도 예전 도움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약하지만 갚아나가면서 받았던 감사를 돌려드리고 있습니다. 헌데 현실은 어떠합니까? 도움을 받아놓고, 이젠 화장실 나왔으니 싹 달라지는 꼴을 봅니다. 이러면 어떤 문제가 발생됩니까? 모든 것은 자기를 녹여낼 때, 향기가 피고, 생명을 틔워냅니다. 하지만 자기만 아는 이들은 그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합니다. 4. 오늘날 펼쳐지는 다양한 유혹입니다. 이것들이 만연하면서 내용을 잘 모르는 우리를 오염시킵니다. 몇 가지만 말하면, ‘회색의 실용주의’입니다. 특정한 것에 얽매이지 않겠다면서 ‘나는 중도야’ 라고 외치지만 실제로는 그 어떤 실천도 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도덕적 상대주의’입니다. 옳고 그르냐의 판단이 보편적 기준이 아닌, 사회의 관습, 문화, 개인의 신념에 따르기에 자칫 야합이 되어, 참된 것을 따르는 우리 방식과 차이가 생깁니다. ‘실천적 상대주의입’니다. 목표도 없고, 계획도 없는 이들이 부표처럼 떠다니기에 당연히 다른 사람을 위한 희생도 없지만, 자신이 원하는 욕망추구에는 그 어떤 것도 불사합니다. 이런 것들을 영적 세속성이라고 말합니다. 이걸 예전 생긴 일이라고만 치부할 수 있을까요? 오늘날도 벌어지는데요.
사랑하는 인헌동 본당 교우 여러분
사람은 지킬 것과 양보할 것을 알 때 사랑이 있고 지혜로운 사람이 됩니다. 우린 새로운 계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러면 시대의 진단을 내릴 때 새로움은 가치를 가집니다. 가치의 진가를 알 때 새로움은 품격을 지닙니다. 품격을 알아차릴 때 새로움은 현실의 문제를 타개합니다. 오늘은 5,18 민주화 운동 기념일이며, 새로이 선출되신 교황14세 즉위 미사가 있는 날입니다. 새로움은 늘 여러 역경을 겪어왔습니다. 쉽게 얻어지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러니 잘 이겨나가면서 우리가 받은 신앙의 유산을 잘 이어나가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