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3주간 목요일
더닝 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 라는 것을 아십니까?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현상’입니다. 미국의 코넬 대학교 사회심리학 교수인 데이비드 더닝이 제시한 이론인데요. 여기엔 알기 쉽게 그래프로 그려놓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좀 배우니까, 자신감을 보이며 어깨가 올라갑니다. 그러다가 자신이 알고 있던 것들이 다른 이론에 의해 부서지고, 깨지면 낙담하는 시기를 맞이합니다. 그렇게 절망의 계곡을 넘게 되면 다시금 겸손한 마음을 가지며, ‘내가 모든 것을 아는 것이 아니구나’ 를 알게된다는 이론입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빈 수레가 요란하’면 안되는 차원을 말하기도 하는데요.
오늘 독서에 필리포스가 에디오피아 칸타게 내시를 만납니다. 당시 내시는 조선시대 사극같은 내시가 아닙니다. 정치적으로는 사절단에 임할 만큼 외교력을 갖추고 있어야 하고요. 나라의 고위 관료직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우연히 ‘이사야 예언서’를 읽던 중, “지금 읽으시는 것을 알아듣습니까?” 라는 물음에 “누가 나를 이끌어주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 답합니다. 복음도 비슷합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처럼 이 종교는 계시종교임을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자연종교와 달리 ‘원하는 이들에게 비밀을 스스로 꺼내보이는 하느님’ 의 가르침의 방식이 들어 있습니다. 사람이 초자연적인 것을 접할 때, 한꺼번에 알아듣지 못하지요. 앞서 더닝 크루거 효과처럼, ‘적당한 나이, 이해력, 진리를 받아들이려는 마음’ 등이 있을 때, 자신의 부족함을 이해하고, 더 높은 차원으로 인도되는데요.
주님의 가르침은 우리를 뛰어넘으십니다. 그래서 빵과 포도주를 축복하신 후, 하는 경문이 ‘신앙의 신비여~’ 이지요. 모든 것을 내 머리로 어찌 다 알겠습니까? 계속 배우고 익힐 때 우린 고개가 숙여지면서 겸손되게 진리를 배우는데요. 그래서 유대교에서 율법학자를 기를 때 ‘1학년은 현자, 2학년은 철학자, 3학년을 학생’이라고 부르답니다. 부족함을 가지고 완전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