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6주간 수요일
안타깝게도 우린 내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해 잘 모르는 부분이 많습니다. 좀 정확히 표현하자면 유려하고, 자세하고, 세분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말입니다. 쓰고있는 언어랄지, 표현 기술 등이 서투르고요. 본래 의도를 충실히 담아내지 못하는 부족함과 동시에 내가 얼마나 알고 있는지, 반대로 얼마나 모르는 지까지 깊게 생각한 적이 많지 않다는 사실이라는 것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요? 우리의 무지함을 직면하다보면 한없이 작아지는 나 자신을 발견하면서 움츠러 들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게 끝일까요?
오늘 바오로는 설명합니다. “알지 못하는 신” 이라 쓰인 제단에서 그리스의 그 많은 신들 중에 그분이 주님이실 수 있음을 말이죠. 허나 반응은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너희에게 할 말이 많지만 아직은 감당하지 못하며 진리의 영이 오셔야 가능하다” 는 인간적으로 답답할 수 있는 말씀이 펼쳐집니다.
솔직히 인정하자면 우린 잘 모르는 것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주님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라고 어떻게 다 아는 듯 말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주님은 이렇지 않다, 저렇지 않다’ 라고 말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자기도 잘 모르는 것을 이야기 한다’ 는 자체가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어떤 교수나 선생도 가르치긴 하지만 그 원리 자체까지 들어가 다 안다며 설명하진 못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어느 만큼만 할 수 있을 뿐이지요. 결국 우린 ‘신비의 영역’을 마주대할 수 밖에 없습니다. 모르는 것을 마주 대하며 그것이 열리기를, 그리고 내가 그것을 알아듣기를, 더 나아가 설명 가능한 수준까지 다다르기를 기다리고 준비할 수 밖에 없는데요. 이러한 우리 스스로의 한계는 나쁜 것이 아니라 실은 진리로 나아가는 겸손의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자세가 그나마 은총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그릇이 되어갑니다. 우리가 주님의 은총을 조금이나마 알아듣고 받아들이는 질박한 그릇이 되길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