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승천 대축일

2025. 5. 31. 오전 11: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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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승천 대축일

 안녕하십니까? 세상이 어수선할 때 가끔 기운나게 하는 것이 있지요. 유머입니다. 되게 웃긴 것부터, 피식 웃게 만들고, 어떤 것은 짜증나게 웃기는데요. 여기서 아재개그가 될 법한 문제 몇 개를 드려봅니다. 아무 생각없이 맞추시면 됩니다. 싼타 할아버지가 가장 싫어하는 차는 뭘까요?’ 싼타페. ‘세상에서 제일 지루한 중학교가 있답니다.’ 로딩중. 오늘 대축일에 맞는 문제입니다. ‘주님이 승천하셨다..를 사자성어로 바꾸면요?’ 주가상승..

 오늘은 주님 승천 대축일입니다. 주님께서 하실 바를 마치시고 올라가시며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시는 날을 기념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가르치신 교육과 우리가 받은 교육의 차이는 뭘까요? 벌써 10년 전에 나왔습니다. ‘공부의 배신이란 책입니다. 저자는 예일대 영문학 교수 윌리엄 데레저위츠입니다. 교수로 살면서 그를 괴롭힌 문제가 있었답니다. 그것은 그가 가르친 학생들은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수재들이었지만 비판적이며 창조적으로 사고하는 법, 목적의식을 찾는 법에 관한 질문을 받으면 어찌할 바를 몰라라 했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를 고민하다 답을 찾았다는데요. 그들이 받은 교육은 세상의 리더를 키워낸 교육이 아니라, 좋은 대학이 학생들을 말 잘 듣는 바보 같은 착한 양으로 키우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교육 방식은 이것과 뭐가 달랐을까요? 첫째 뭔가를 알려주고서 그것을 분별하도록 기다려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성모님을 보십시오. 천사가 나타나 그녀에게 벌어질 일을 알려주지만 성모님은 무조건 따르지 않습니다. 잠시 고민을 합니다. 그러면서 받아들입니다. 2독서에 나오잖습니까? 무조건 따르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어..”를 통해 스스로 분별과 판단을 허락하십니다. 둘째로, 무조건 믿고 따르게끔 억지로 시키지 않으십니다. 요새 학생들이 강의시간에 켜는 것이 있습니다. 핸드폰 녹음버튼입니다. 그걸 켜놓고 강의를 듣습니다. 왜요? 시험 때 그대로 써야 하기 때문입니다. 필기만 하다간 놓치기 쉽고요. 자칫 자기 생각을 쓰다가 교수와 반대되는 내용을 쓰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교수의 말을 그대로 옮겨야 점수를 잘 받으니까요. 하지만 주님의 방식은 다릅니다. 오히려 의심을 허락합니다. 비판을 용인합니다. 그러면서 난 가르쳐 줬는데 여기에 반박할 꺼리가 있으면 한 번 가져와봐라는 방식으로 가르치십니다. 그걸 찾는 것도 공부이지요. 그러면서 자신이 무엇을 놓치고 있는 지도 확인하게 하십니다. 그 방법 중 하나가 회개지요. 복음에 나오잖습니까?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인류가 해왔던 행실에서 무엇을 놓치고 착각했었는지 바라보게 하면서 그것을 스스로 인정하게 만드는 방법이지요. 셋째로 모범을 보이십니다. 말만 그럴 듯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 당신 스스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며 희생이 뭔지를 보여주십니다. 자기를 죽이는 정신, 그런 자세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돌리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보통은 이별할 때 우리들은 이제 나는 혼자이구나..’ 싶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내 아버지께 약속하신 분을 내가 너희에게 보내겠다 하시며 협조자인 성령을 보내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자칫 내버려진 것 같은 우울함에 빠질 것을 염려하시기 때문인데요.

 사랑하는 인헌동 본당 교우 여러분

 주님은 보통 사람들처럼 내 말 잘 듣는 사람만 원치 않으셨습니다. 말 잘 듣는 순한 양을 키워내려 하심이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 의심하길 원하시고요. 깨닫는 시간을 허락하시며, 그것이 가능하다는 모범을 보이시며, 홀로 내버려두지 않으신 분이셨습니다. 그랬기에 1독서의 저자는 사도행전 서두의 내용을 통해 우리가 어떤 분에 대해 배웠는지를 되새기게 해줍니다. 내 말 잘 듣도록 강요만 시키면 무슨 문제가 벌어지는지 아십니까? 사람 안에 원래 있던 욕망이 당장엔 눌려있다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터져 나옵니다. 갑자기 터지기에 왜곡된 방향으로 흘러서 배운 지성이 자신의 인성과 제대로 결합되지 못하는 문제가 벌어집니다. 그래서 높은 학력자가 오히려 이상한 말을 내뱉고 행동하는 일이 벌어지는데요. 우리의 믿음은 누가 찍어만든 벽돌같은 것이 아닙니다. 각자 사유하면서 분별하여 판단한 것이고요. 그런 이들이 오늘날의 교회를 이뤘습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인들의 유산이지요. 실패와 굴곡과 억눌린 본능을 바라보며 주님과 화해하며 얻어낸 믿음의 현장입니다. 여러분도 인정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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